조선일보에서 은퇴한 선배 한분은 요즘 명함에 조선일보 공채출신에다 출신대학까지 써넣고 다닙니다. 무슨 3류 정치인 명함도 아니고,약력에다 경력까지 구구절절이 적어놓은게 언뜻보기에 촌스럽기 짝이없습니다.

하지만 이유가 있습니다. 사회에서 좀 알아달라는 것입니다. “아직 죽지않았어!”라는 강한 자기표현이기도 하고요.

큰 조직에서 벗어나면 누구나 마이너가 됩니다. 마이너는 조직도,자본도,사업도,기댈 언덕도 없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품은 뜻은 그대로되  현실은 따로놉니다.

잘 준비된 ‘강한 마이너’라면 몰라도 마이너 인생은 운명처럼 어느날 갑자기 다가옵니다. 생각처럼,계획처럼 다가 오지 않습니다. 벼랑이 따로 없지요. 준비된 마이너를 잘 감당하는 부류는 소수일 겁니다.

굴지의 대기업 사장을 하다 나온 은퇴한 CEO분의 얘기가 새롭습니다. 돈은 많이 벌었어도 “내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기댈 언덕을 잃어버린 마이너의 자조입니다.

내가 아는 또 다른 대기업 사장출신은 요즘 벌어놓은 돈으로 콘도사서 거의 매일 부부끼리,은퇴한 지인끼리 신나게 골프나 치고 다닙니다.

하지만 얼굴 표정 한 구석에는 세상사와 잊혀지고 있다는,조직의 권력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허무,허탈이 역력합니다. 그리고 그 ‘여유의 권력마저’ 조만간 바닥날 것이라는 불안감,마이너의 조급함도 엿보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갖고 있던 직장,조직의 ‘권력’은 순간입니다. 잠시 위임받은 권력이 영원할 것으로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오너의 권력,조직의 힘을 잠시 빌려 사회에서 대접받고,큰소리치고 살았는데, 그게 길지않았습니다. 열흘가는 붉은 꽃이 없다는 진리를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잘나가는 CEO 월급쟁이도 결국 烹이라는 숙명의 길을 걷게되고,마이너 생활이라는 외나무다리와 마주칩니다.

주류는 갑이고,마이너는 을입니다. 그나마 젊을 때는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나면 안됩니다. 마이너의 질곡에 한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기 힘들기때문입니다.

십수년전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원로체육인 김종하회장과 저녁을 하면서 들은 얘기가 아직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그는 남자는 모름지기 3가지중 한가지를 갖고 있지않으면 서럽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권력,둘째는 돈,그게 없으면 주먹이라도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이너가 되지않기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할까요.

두말할 필요없이 젊은 시절에는 주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원한 마이너는 서럽고 또 서럽습니다. 그래서 은퇴한이후,조직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마이너의 생활에 필요한 게 '칼'입니다. '칼'의 의미는 아주 중요합니다.

게다가 마이너는 정글의 세계입니다. 자본,인력,기술도 없고,정통도 잘 통하지 않습니다. 속고 속이고,뒤통수치는 일도 많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詐術,과장,위장도 경쟁력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슬픈 역설입니다.  그래서 '칼'이 있어야 합니다.

나도 마이너 생활로 뛰어든지 오래됐습니다. 내공도 생겼습니다. 나는 몇가지 인연으로 의약전문지에 뛰어 들었습니다. 의약전문지는 언론에서는 마이너중의 마이너입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성장가능성이 높은 분야라고 판단했고,우선 온라인으로 정보를 주고 받는 시대가 대세라고 봤습니다.

경제지에서 유통사회부장을 지내면서 의약계를 수박겉핧기나마 경험하고,집사람이 아파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다른 의료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될 정보를 공유하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경험도,의학상식도,인맥도 부족했습니다.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배우고,사람만나 인맥쌓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메이저의 세계에 마이너가 있듯 마이너의 세계도 메이저가 있습니다. 먼저 고생하고 자리잡아 자본과 인력을 꽤 갖춘 마이너중의 메이저가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겪었을 고충과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습니다.

마이너 생활을 하다보면 서러움,회의,번뇌가 하루에도 열두번 스쳐갑니다. 그래서 소수의 인맥,열악한 인력과 자본,콘텐츠로 회사를 끌어간다는 게 여간 녹록치않습니다.

다시말해 수십개가 난립해 있는 기존의 전문매체들과 경쟁한다는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정글이 따로없습니다.

마이너가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시간과 인내는 필수라는 나름대로의 철학이 생겼습니다.

길은 딱하나.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 입소문 나고, 그 존재감과 파워가 시장에서 평가받을때 비로소 하나의 전문매체로서 인정받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명품 마이너 인생을 위해, 후반전 인생을 위해 오늘도 정진합니다. 이것도 마이너의 '칼'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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