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직했을때,사업이 안될때,직장에서 고민이 생겼을때,집안에 우환이 있을때,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때···. 누군가 언제인가는 겪을 수 있는 고민,아픔들입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이같은 극한 상황의 외나무다리에서 만났을때 하루중 가장 힘든 시기는 언제일까요.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잠에서 막 깨어난 아침이라고 말합니다. 아침에 막깨어 이런 고민,아픔의 강도가 약하다면 그래도 견딜만하다는 얘기입니다.

어떤 실직자는 아침에 깨었을때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정말 막막하다고 말합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지낼지,그 자체가 고통입니다. 아득한 생각밖에 안듭니다. 희망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순간 사람을 절망의 벼랑으로 몰지만 묘하게도 아침에 ‘사고’를 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희망이 없어진 사람들은 이렇듯 하루중 아침이 가장 두렵고,하루를 여는 게 아주 버겁습니다.고민이 있을때 새벽잠이 없어지는 현상과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고민에 짓눌려 있을때, 아침에 깨면 ‘하나님’이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나옵니다. 비록 不信者라고 해도 자연발생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터지는 탄식조의 첫 외마디가 ‘하나님’입니다. 인간 어디엔가 잠재해 있는 원초적 신앙심의 발로아닌가 싶습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말하면 조물주에 의지해 일어나려는,본능적 몸부림이랄까요. 누구한테 위로받아도 위로가 될 수 없어, 그래서 감당하기 너무나 힘든 ‘납덩이’같은 고민이 있을 때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집니다.

그런데 왜 하필 잠에서 깨어난 새벽일까요. 정신과 전문의들은 이를 우울증적 증세의 일단으로 봅니다. 우울증세가 있으면 아침이 가장 힘들다는 사실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아침의 절망은 시간이 흘러 낮시간이 되면 점차 강도가 약해집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면 아침의 힘든 시간은 물론 눈녹듯 사라진다고 합니다.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절망은 '죄'이고, 하나님에 의해 구제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절망의 새벽에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탄식조 외마디는 바로 구원받으려는, 하나님에 기대서 위로받아 역경을 이겨내려는 마지막 ‘희망’인 것입니다.

판도라 상자를 열었을때 모든 욕망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꿈틀거리는 희망(세속적이든,신앙이든)만이 새벽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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