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새한그룹 워크아웃 幕前幕後④>

좌초된 이재관의 꿈과 도전‥새한 간판 내리다
 

새한그룹은 재계의 무대뒤로 사라졌다. 새한그룹의 주력사로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제일합섬 후신 (주)새한이 웅진그룹으로 넘어가 웅진케미컬로 바뀌었다.  새한 간판을 단 일본계  도레이새한도 최근 ‘새한’ 간판을 떼고 개명했다.

이로써 새한의 흔적은 사라졌다. 세간은 새한그룹의 몰락이 삼성가 2세 경영인의 꿈과 도전이 삼성가 최초로 좌초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삼성가는 삼성에서 분가한 제일제당,한솔,신세계,새한그룹 등 위성그룹 4인방 중 유일하게 새한그룹만 몰락한 것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새한의 전신인 제일합섬은 삼성그룹의 모태기업으로,재산분가전부터 삼성 이건희 회장의 형인 故 이창희 회장의 몫이었다.

하지만 제일합섬은 새한그룹에 편입되면서 부실 계열사들의 母乳 역할을 하다 병이 들고 말았다.  삼성그룹 계열사중 가장 먼저 몰락한 기업으로 기록된 것이다.

새한의 몰락과정에서 주목할 핵심 인물은 이건희 회장의 조카인 이재관 부회장이다. 故 이창희 새한미디어 회장의 세아들 중 장남이었다. 고려대를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터프스대를 졸업했다. 

선친 이창희 회장의 급작스런 별세로 30대초반 선친이 남긴 새한미디어 경영에 참여했다. 삼성 창업자 이병철 회장이 할아버지이고,이건희 회장이 작은 아버지,따라서 그는 삼성가 3세 경영인인 셈이다. 삼성 이재용 부사장,제일제당 이재현 부회장,신세계 정용진 부사장 등이 사촌이다.

그는 삼성출신 전문경영인 H부회장과 함께 새한부실의 ‘1등공신’으로 지목되고 있다.

“새한이 부실해지고 몰락한데는 H부회장과 이재관부회장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그래도 이재관 부회장은 억울한 점이 많지만.” 

새한출신 한 핵심경영층은 여운을 남겼다.

이 부회장은 새한의 부실을 자초했다.

'오너경영의 병폐다.' 후일 핵심 경영층은 이부회장의 '전횡'을 이같은 한마디로 질타했다.

새한은 사실상 새한그룹의 모기업이었다. 비디오테이프로 유명한 새한미디어,해외영화를 수입하고 제작하던 디지털미디어,새한건설 등의 계열사에 새한 돈을 마구 꿔주고,지급보증해준 것이다.  새한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수십억짜리 교회지어 헌납하고, 기흥땅 수만평에다 최고급 주택을 짓는다고 수십억들여 견본주택 만들었다가 허물었다.  ‘깨진 독 불붓기'식으로 돈이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입김이 작용했음은 두말할 필요없다. 누구도 이부회장의 ‘지시’를 거역하지 못했다.  

자금당당 실무진들의 판단은 철저히 배제됐다. 그들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갔고,이부회장에 대한 불신은 날로 커졌다. 

“이러다가 회사 오래 못가겠군.”

이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1996년12월 찾아온 외환위기로 새한그룹이 갑자기 부실화된 것은 아니었다. 외환위기로 환율이 높아지면서 한때 수출이 반짝였다. 하지만 내수가 부진하고,그동안 이런 저런 사업을 벌이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와 이자를 갈수록  감당하기 힘들지자 어려움이 가속화된 것이다. 외환위기가 그룹 몰락의 빌미가 됐던 것만은 분명하다.

1997년 봄 내가 새한그룹에 온지 얼마 안됐을때다. 당시 그룹 3인자였던 김모 기획조정실장과 얘기도중 그는 농담조로 최고경영진에 대한 불신을 털어놨다. 당시 농담으로 생각했으나 자금사정을 꿰뚫고 있던 그의 발언은 후일 워크아웃과 맞물려 음미할만했다.

“이부회장이 회사를 맡으면 3년,H부회장이 경영하면 회사가 5년밖에 못갈거야.” 회사는 그의 예측보다 더욱 가파르게 주저앉고 있었다. 

새한 몰락과정에서 주목할 또다른 인물이 전문경영인 H부회장이다.

한때 삼성의 전문경영인으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새한 책임자로 있을때 은퇴에 대비한 ‘작업’에만 몰두했지만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못했다. 자식회사를 만들어 새한의 협력기업으로 등록했다. 논란이 많았고, 내부 시선이 곱지못했다. 물론 그도 이 부회장의 부실경영에 제동을 걸지못했다.

이부회장 역시 내부정보에 어두웠던듯 H부회장을 견제하지 못했다. 2000년이 다돼서야 H부회장과 새한의 공동 대표이사를 맡으며 새한 경영에 본격 참여했지만 이미 때가 늦은 뒤였다.

워크아웃후 새한이 채권단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과거에 저지른 분식회계가 낱낱이 파헤쳐졌다. 이부회장 등 핵심 임원들이 고발됐고, 검찰수사를 받았다. 당시 이부회장 주변에는 ‘파리떼’들이 들끓었다.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이부회장은 김대중 정권 당시 최고 실세였던 K모씨에게 줄을 댔다. 실세 K모씨와 만날 스케줄을 한번 잡는데 드는 비용만 3천만원이 들어갔다던가. 그럴듯한 루머가 회사내부에서 회자됐다.

동시에 검찰 인맥에도 줄을 댔다. 이 과정에서 부나방처럼 몰려든 이부회장 지인들에게 10억원을 제공했고, 이 돈이 배달사고가 났다는 사실이 후일 드러나기도 했다.

분식회계 사건과 관련해 이 부회장의 한 측근 임원은 돈으로 보상받는 대신,이 사건에 ‘총대’를 메고 감옥가기로 약속했으나 이 부회장은 김대중 정권의 실세에게 ‘보험’을 들었다는 이유로 그 임원이 요구한 거액보상을 해주지 않았다는 후문도 들려왔다.

“분식회계 사건이 발생하자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몰려 들었고,세상물정 모르는 이부회장의 등을 많이 쳤어요.사기도 많이 당했고···.”

후일 새한의 최고경영자는 진심으로 이부회장을 동정했다.

그의 증언은 이어졌다.

“새한이 운이 없었어요.새한이 위기일때 보광그룹 세무사건이 터졌어요. 삼성은 고민스러웠습니다. 삼성은 보광그룹과 새한그룹중에서 새한을 포기해야 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래서 삼성그룹이 새한그룹을 돕기로 돼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의 처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운영하는 보광그룹의 세무사건으로 결국 새한을 돕지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조카보다 처남이 가깝다’는 게 핏줄의 속성인가.

작은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은 이 부회장을 돕겠다고 했지만 삼성의 경영진들의 생각은 달랐다.

삼성그룹 수뇌진은 이부회장의 도움요청에 ‘노’로 답했다. 돈에 관한한 삼성은 냉정했고, 삼성의 로열패밀리 이부회장은 피눈물을 흘렸다.

이 부회장은 작은 아버지 말만 믿고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삼고초려 끝에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나 도움을 요청했지만 끝내 홀대 당했다고 회사로 돌아와서는 핵심 임원들에게 하소연했다.

무엇보다 새한에 돈을 빌려준 삼성화재와 삼성생명이 평소같으면 롤오버(만기상환연장) 해줬을 500억원대 견질어음을 회수했고, 이 바람에 새한의 자금난이 막다른 벼랑에 몰렸다.

결국 워크아웃으로 직행하는 결정타가 되고 말았다는 게 당시 새한 최고 경영층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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