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데 F가 두 개 필요해. Forget 잊어버리라, 그리고 Forgive 용서하라.”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평소에 좋아하는 단어라 더 공감이 간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삶은 메마를 것이다. 하지만 잊었다고 생각했던 일이 기억나기도 하고 또 잊어버리기도 하는 것이 인생 아닐까요 거실 베란다 의자에 앉아 불과 2미터 앞에 있는 목련나무, 은행나무, 소박한 수국... 아름다운 신록의 오월 오후에 여유롭게 책을 읽는데 갑자기 20대 중반 사랑니 발치 사건이 생각났다.

동네 지긋한 연세의 치과의사에게 매복된 아래 사랑니 발치를 받은 후 침을 삼키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말기 암 환자 통증에 사용되는 마약이 생각날 정도였다.

치아 일부만 보인 사랑니를 신경전달(block) 마취 후 잘 뽑히지 않자 중단하기를 여러 번, 우여곡절 끝에 발치한 사랑니를 보여주며 “이건 치아가 아니라 고구마다”라는 원장님의 모습을 보며 민망함과 함께 드디어 살았다는 안도감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사랑니 발치의 필요성

가까운 지인은 30대 중반까지 아래 좌우에 매복된 사랑니 발치를 미루다 옆에 있는 어금니 두개가 손상(80% 치아우식)된 상태에서 진료 받았는데, 진료비도 많이 들고 고생하다 결국 어금니까지 발치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랑니는 똑바로 나온 경우를 제외하면 발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랑니가 잇몸에 매복되어 있고, 사랑니까지 양치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치아관리가 어려우므로 가능한 빨리 발치하는 것이 옆 어금니 보존에 도움이 된다.

▷사랑니 발치 사고

최근 3년간 한국소비자원에 사랑니 발치 관련 의료상담은 384건으로, 대부분 사랑니 발치 후 감각이상에 대한 문의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각이상이 정상으로 회복되기 때문에 상담이 피해구제로 접수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분이다.

매복된 사랑니 뿌리가 신경 근처까지 인접해 있는 경우, 발치를 위해 신경전달 마취로 인해 설신경(lingual nerve)이 손상되면 혀나 입술에 감각이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감각이상은 6개월 이내에 회복되지만 극히 일부에서 영구적으로 남기도 하는데 이러한 신경손상은 의사의 과실보다 불가피한 경우로 ’불가항력 사고‘인 경우가 많다.

▷사랑니 발치의 최근 법원 판결

2009년에 선고된 사랑니 발치 판결에서, 2004년 57세 여자환자가 잇몸에 완전히 파묻힌 상태의 사랑니 발치를 받은 후 설신경 손상으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장애 진단을 인정하여 위자료만 2000만원(배상액은 총3400만원)지급하라고 하였다.

혀 신경 손상은 환자의 치아상태, 신체적 특성에 기인하는 부분이 있고 난이도가 높은 수술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임을 고려하여 치과의사 책임을 80%로 제한했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이 사건은 치과의사가 항소하여 현재 재판 진행 중에 있어 그 결과에 대한 파장이 예상된다.

▷사랑니 발치 의료수가

현재 사랑니 발치 의료보험 수가는 환자부담금 기준으로 ‘단순발치’는 5,300원이고 ‘매복치 발치’의 경우 1만3900원으로 규정(미국의 경우 매복치 1개 발치수가는 100만원)되어 있다. 사랑니 발치는 예견할 수 없는 신경손상 가능성이 높고, 사랑니 상태에 따라 위험성, 난이도가 다르기 때문에 상황을 고려한 현실적인 수가 개선이 필요하다.

▷사랑니 발치의 딜레마

대한치과의사협회 조사에 의하면 치과의사 상당수는 사랑니 발치후 발생할 수 있는 감각이상에 대해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많은 경험과 실력이 있더라도 매복치의 난이도 등 환자 특성에 따라 후유증이 불가피한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랑니 발치는 치과의원의 기피대상이 될 여지가 높다.

물론 대학병원 구강외과에서도 사랑니 발치를 꺼려하게 되리라고 쉽게 짐작되며, 발치전 후유증에 대한 과잉설명 뿐 아니라 소신 있는 진료보다 방어적 진료위축이 예견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랑니는 가급적 일찍 발치하는 것이 좋은데 ‘치과의원’에서 발치 받지 못하고 상급병원에 더 많은 진료비를 지불하면서 어렵게 사랑니 발치를 받게 된다면 사회적 비용만 증가하고 국민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환자가 느끼는 감각이상은 주관적인 경향이 많기 때문에 감각이상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어 진료현장의 환자와 의사간의 불신도 예상된다.

따라서 치과의사는 환자에게 사랑니 상태에 따른 합병증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환자는 치과의사로부터 받은 정보를 전제로 발치 여부를 신중하게 고려, 신뢰하는 마음으로 시술받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의무를 나의 권리로 삼는다면 의무는 없고 권리만 남게 되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분쟁업무를 하면서 종종 느끼는데 이기적인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각인가 ...

사랑니 발치 사건의 항소심 법원의 현명하고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이 기다려진다.

신록이 주는 평안함과 여유로움 속에서 ‘잊어버리고 용서하기’를 되새기며 우리 삶에 두 개의 ‘F'가 자주 사용될 것을 기대해 본다.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국 의료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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