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조정법(의분법ㆍ일명 신해철법 또는 예강이법)이 국회 법사위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법 개정에 좌절됐다.

국회 법사위는 지난 주말 이 법 등을 비롯한 보건복지부위원회를 통과한 보건 관련 법안 12건이 법사위에 회부됐으나 모두 통과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법은 환자가 사망 또는 중상을 입는 의료사고를 당해 분쟁조정신청을 하면 의사 또는 의료기관의 동의가 없더라도 자동으로 분쟁조정을 개시하는 제도다.

사망 또는 중상등 중요한 의료사고 시 유족 또는 피해환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의사 또는 의료기관의 동의 없어도 강제적으로 분쟁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국회가 이를 무시한 것이다. 이것이 무슨 민생국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 제도는 지금 새삼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 2011년 의료사고 피해자와 유족들의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해 처음 도입됐다. 그러나 당시 피신청자인 의사와 의료기관등 의료계의 반발이 워낙 심해 피신청자가 거부하거나 14일동안 응답이 없으면 각하돼 1년간 유예기간을 갖도록 한 조항을 둬 사실상 있으나 마나한 법이 되고 말았다.

피해 환자나 유족들은 어쩔수 없이 민사소송을 통해 억울함을 풀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민사소송 시 환자나 유족이 넘어야 할 산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우선 고액의 변호사선임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최소 500만원 이상이다. 소송에서 질 경우엔 상대방 변호사 선임비용까지 물어야 한다.

이뿐 아니다. 1심 판결에만 평균 2년 6개월이 걸리고 2심을 거쳐 대법 판결까지는 5~6년이란 긴 세월이 걸린다. 환자 본인 또는 유족들의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수 없다. 여기에 의료과실을 입증하는 것도 환자 측 책임이다. 전문지식이 없는 환자 측에서 승소하기는 사실상 하늘의 별따기라는 이야기다.

이에 비해 의사 또는 의료기관이 유사시 강제적인 자동분쟁조정 방식에 반대하는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환자 측의 일방적 요구에 의해 중재가 진행되면 의사는 의료사고를 피하기 위해 소극적ㆍ방어적으로 환자를 진료해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형사처벌이 두려워 환자치료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억울한 환자들의 입장을 생각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은 지난 2014년 3월이었다. 거의 2년 만에 국회 복지위의 문턱도 넘었다. 그러나 법사위라는 마지막 관문에서 또 좌절된 것이다. 환자단체들은 대한의사협회, 대한개원의협회를 비롯한 의료인단체가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졸속심의”라는 이유로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국회마저 환자 측 바람을 외면하고 의사들의 편에 선 것이다. 의료사고로 사망한 유족이나 피해환자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국회의원들은 유권자들이 총선에서 솎아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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