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제학술대회를 인정하는 기준을 강화하자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들이 일제히 반발해 의ㆍ정(醫ㆍ政)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한국제약협회,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각종 국제학술대회의 인정기준을 강화한 공정경쟁규약 개정안을 마련하고 이를 각 의약학회에 제시, 의견을 제출토록 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국제학술대회 개최 시 이를 인정받으려면 △5개국 이상에서 발표자ㆍ좌장ㆍ토론자가 아닌 일반 보건의료전문가가 청중으로 참가하거나 △외국인 회의 참가자 수 150명 이상 등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갖추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이들 조건 중 한 가지만 갖추면 국제학술대회로 인정됐었다. 이밖에도 소요경비 중 국내 주관단체의 부담률을 20%에서 30%로 높이고 피초청자의 숙박 식비 교통비 지급규정과 회의 완료 후 경비 정산 내용 등도 까다롭게 정했다.

사실 민간단체가 주관하는 국제학술대회의 인정기준과 소요경비 및 정산방법에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이는 민간 자율적 학술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처럼 국제학술대회 인정기준을 강화하고 나선 것은 국제대회를 빌미로 의약단체의 과다한 리베이트 수수 등 물의가 끊이지 않고 있어 이를 근절하기 위한 것이다. 당국이 소위 스폰서라는 명분으로 국제학술대회 주관학회에 필요경비를 제공하고 있는 의약 및 의료기기 관련 단체와 공동으로 회의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후원단체의 지원이 없다면 의ㆍ약관계 국제학술대회의 국내 개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의협과 관련 학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8월~2015년 11월까지 4년동안 국내에서 열린 보건의료 관계 국제학술대회는 119건이었다. 이 중 당국이 마련한 새로운 기준을 적용할 경우 계속 살아남을 국제학회는 겨우 20건에 불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따라서 정부의 국제대회 인정기준 강화는 국내에서 보건의료 관련 국제대회를 아예 열지 말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 의약계의 반응이다.

국제학술대회는 새로운 해외보건의료정보를 접할 수 있는 기회이자 국내외 저명한 연구자 간 교류의 장이다. 보건의료연구의 국제적 경향을 읽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국내 관련학자나 청중이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해외석학들의 강의를 들을 수도 있다. 대규모 대회는 국내 관광산업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국제대회의 기준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은 이름만 국제대회일뿐 사실상 국내대회만도 못한 조잡한 국제대회가 많다고 보기 때문으로 보인다. 과다 리베이트 수수 의혹이 있다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국제대회 인정기준 강화로 지금까지 잘 운영해오던 국제대회까지 중단된다면 이는 빈대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국제학술대회를 둘러싼 각종 부조리를 척결하기 위해서는 국제대회의 인정기준 강화보다는 관련 업계의 지원액과 필요경비 지급 등에 대한 투명한 운영이 우선돼야 한다고 본다. 이를 두고 당국과 의약단체, 지원 업계 간 대화가 활발하게 진행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메디소비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