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소비자뉴스=편집국] 삶 속에서 다툼은 좋지 않은 결과를 ‘자기 책임’보다 ‘남의 책임’으로 생각하면서 시작된다.

 의료분쟁 역시 뜻하지 않은 사고(진료의 악 결과) 원인이 의사책임이라는 억울한 생각에서 발생되는 것 같다. 특히 암 오진 분쟁에서 소비자는 ‘암 지연진단’ 책임을 마치 의사가 ‘암을 발생’시킨 양 강력한 책임을 묻고 싶은 심리가 잠재해 있는 듯하다.

60세 남자 환자는 30년 전 직장 건강검진에서 간염보균자(HBV)로 진단받고 6년 전부터 간암 조기발견을 목적으로 소화기내과에서 정기적인 진료를 받았는데, 작년 초 심한 복통으로 복부CT 촬영을 받은 결과 ‘간암 말기’로 진단, 3개월간 통증완화 치료만 받던 중 사망했다.

의사는 ‘간암 조기검진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기적인 초음파와 혈액검사를 했으므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초음파 검사의 한계(큰 종양도 진단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음)때문에 국내 대학병원(소화기내과)에서는 간암 고위험환자에게 복부CT나 MRI 검사를 1년에 1회 또는 2년에 1회 시행하고 있다.

망자의 배우자는 ‘초음파 검사의 한계가 있으니 복부CT 검사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했다면 비용이 1000만 원이라도 당연히 검사받았을 것이다’며 아쉬움과 분노를 토해냈다.

간암의 조기검진

간암은 발생 초기에 진행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종양 크기가 두 배로 되는데 약4개월 걸리지만 국내에서 조기진단은 불과 20%미만으로 보고된다.

‘간암 조기검진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B형간염바이러스에 의한 만성간염환자는 6개월마다 복부 초음파검사와 혈청 알파태아단백 측정을 권하며 고위험환자는 검진 간격을 단축하거나 복부CT 촬영을 검진 방법에 추가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간암이 초음파만으로 진단이 어려운 경우(침윤성, infiltrative type으로 발생)는 단순 복부CT 검사를 해도 확인이 힘들기 때문에 이러한 불완전성을 고려한다면 비용(cost-effectiveness)을 감안하더라도 정확한 간암 조기진단을 위해 역동적 조영증강복부CT 검사를 시행할 필요도 있다.

분쟁의 쟁점과 해결

만성 간염보균자의 0.5%, 간경변증환자는 약 1~6%에서 매년 간암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간의 염증과 재생이 반복되면 암세포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점, 초음파검사가 간암 조기진단에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대학병원에서 복부CT를 주기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임상현실을 분쟁해결에 고려해야 한다.

사례에 소개한 환자는 간암 고위험군에 해당되기 때문에 초음파 검사의 한계(특이도, 민감도 고려)를 생각하고, 복부CT 검사가 필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사가 설명했다면 환자는 비용부담을 감수하고 검사를 받았을 것이고(가정적 추정) 그 결과 암이 조기진단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간암 고위험환자임에도 진료 받는 6년간 복부CT 검사를 한 번도 하지 않았고 그 필요성을 설명하지 않은 책임(주의 및 설명의무위반)으로 위자료가 지급됐다. 

국내 영상의료장비 보유정도

고가 영상의료장비인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PET(양전자단층촬영기)가 국내 의료기관에 몇 대나 있으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비교한 보유량은 어느 정도일까 복지부에 의하면 작년 말 기준 CT는 1788대(‘04년 791대), MRI 854대, PET는 111대 있고, 인구100만 명당 CT는 37.1대로 OECD 평균 22.8대보다 1.6배 많고, MRI도 16대로 1.5배 많은 것으로 보고됐다.

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소비자들은 건강검진을 위해 100만 원에 근접한 비용을 들여 MRI 촬영을 받고자 대기하고 있어 새벽은 물론 24시간 내내 MRI 촬영을 하는 대형병원도 있다.

 가령 건강 체크를 위해 MRI 검사비로 100만원을 지불한 결과, 정상으로 확인됐다면 본전(검사비용)생각보다 건강해서 다행이라고 안심할지 단순 건강검진과 암 조기 발견을 위한 검사는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검사결과에 대한 반응 또한 매우 다를 것이다.

만약, 당신이 간암 고위험환자로서 매년 복부CT 검사를 한 결과 정상으로 확인될 경우라도 과잉진료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의사의 설명대로 검사에 응할 수 있을까.

“싸움은 첫째 싸우지 않는 것[無爭]이 상지상책(上之上策)입니다. 그 다음이 잘 지는 것[易敗], 그 다음이 작은 싸움[靜爭], 그리고 이기든 지든 큰싸움[亂爭]은 하책(下策)에 속합니다.” 얼마 전 읽었던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내용이죠. 의료분쟁 업무를 하면서 환자, 의사를 생각할 때, 그리고 사건 담당자로서 늘 되새기고 싶은 말을 함께 나누고 싶다.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국 의료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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