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소비자뉴스=편집국] 최근 삼성그룹의 이건희회장 조카의 투신자살로 10년전 새한그룹의 몰락이 다시한번 세간의 화제가 됐다.

새한그룹의 워크아웃은 재계에서 예상치못한 충격이었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오래전부터 예견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1995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제일합섬은 故 이창희 새한미디어 창업주(이건희회장의 둘째형)가 삼성가의 재산분가 차원에서 물려받은 재산이었고,분리된 제일합섬이 새한미디어와 합쳐 새한그룹으로 출범했다.

제일합섬은 사명은 (주)새한으로 바뀌었다. 새한은 새한미디어보다 자산·매출에서 2배이상 컸다. 사실상 모기업이었다.

그러다보니 새한은 새한미디어를 비롯한 계열사들이 어려울때마나 자금을 대주는 젖줄역할을 했다.

새한 경영이 어려워진데는 오너의 독단적이고 비상식적인 경영행태,보신주의에 젖은 당시 일부 최고 전문경영인들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

새한그룹은 계열사로 아파트 등을 짓는 새한건설을 만들었다. 새한은 새한건설을 만드는데 1000억원을 지급보증서거나 자금을 대줬다.

그리고 최근 투신자살한 故 이재찬씨가 사장으로 있던 디지털미디어를 설립하는데 1000억원가량이 들어갔다.

이 돈은 회사의 간판을 내리면서 허공으로 날아갔고,새한이 고스란히 부채를 떠안았다.

또 새한은 새한미디어 계열사로 콘크리트파일을 만드는 새한마텍의 충주땅을 사는데 자금을 대줬다.

게다가 툭하면 새한미디어 등에도 자금을 지원했다.새한은 갈수록 부실화됐고,늙은 어미의 젖무덤처럼 쪼그라져갔다.

IMF체제후 이재관부회장의 사돈인 동방기업의 마포사옥을 사면서 새한은 당시 시세 250억원보다 비싼 330억원에 구입해 구설수에 올랐다.

과거부터 무리하게 공장을 증설해 부실요인을 키웠지만 새한그룹 출범후에도 모기업 새한은 이 계열사,저 계열사 퍼주느라 2000년5월 워크아웃당시 새한 부채가 1조5000억원에 달했다. 새한은 이자까지 치솟으며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1999년 여름 새한은 발등의 불을 끄기위해 일본 도레이사(현재 도레이첨단소재)에 공장 3곳 중 하나인 구미공장을 5000억원에 팔았지만 자금난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후 새한 경산공장 부지 등을 팔려고 삼성생명 등을 대상으로 백방으로 뛰었지만 무위에 그쳤다.

그래서 1999년말 그룹내부에서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밖에는 살길이 없다고 재무관련 임원들이 사주측에 제안했지만 경영권이 불안해진 사주는 이를 일축했고, 재무 등 핵심임원간 불화가 이어졌다.

2000년봄 새한그룹의 자금난,내부사정을 훤히 꿰뚫고 있던 삼성그룹 계열 금융사들은 새한으로부터 자금을 가장 먼저 회수했다.

관행대로라면 롤오버(만기상환연장) 해주었을 삼성화재는 수백억원의 견질어음을 돌렸고,새한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계열사 뒤치다꺼리로 새한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믿고 믿었던 삼성까지 돌아서면서 재계 27위의 새한그룹은 재계의 무대뒤로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새한그룹은 빚이 많았더라도 전국 요지에 땅 등 자산이 많고,수처리·MP3·합섬분야 등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갖고 있어 조금만 잘 버티었더라면 지금까지 건재했을 것이라고 새한 임원들은 안타까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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