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 한 병에 400~500원에 팔리고, 연간 시장규모가 2000억원 안팎인 드링크제다. 약국에선 친지가 들르면 차 대접 하듯 내주기도 한다. 박카스를 달라면 냉장고에서 꺼내 마시라는 약국도 있다. 10개들이 박스를 달라면 아무 말 없이 내주고 돈을 받는다. 부작용을 경고하는 약사는 본 적이 없다. 이런 약들을 편의점에서 팔자고 하니 약사들이 난리가 났다. 보건복지가족부도 국민의 건강을 해칠 수 있다며 반대한다.

지난 15일 서울지방조달청에서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 주최로 열린 의약부문 전문자격사 시장 선진화 공청회가 있었다. 약사들의 무력 시위로 무산된 지 한 달여 만에 다시 열린 것이다. 공청회에서 KDI는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구분 기준을 정해 정기적으로 재분류를 하며 ▶피로해소제 등 안전성이 확인된 의약품(OTC)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고 ▶영리법인 약국의 허가를 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KDI는 OTC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해야 하는 것은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든 쉽게 약을 살 수 있게 하자는 취지라고 했다.

약사들은 전국의 약국이 2만1000개로 국민 2300~2400명에 하나꼴이어서 약을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심야나 휴일에 약을 못 사서 고생했다는 불평을 한다. 박카스나 파스, 까스활명수 같은 OTC를 편의점에서 팔면 오남용으로 국민 건강을 해친다는 주장이 있다. 많은 가정에서 상비약으로 가지고 있는 아스피린이나 타이레놀의 부작용을 예로 들며 큰일 날 것이라고 겁을 주기도 한다. 그렇게 부작용이 무서운 약이라면 차라리 의사의 처방을 받는 전문약품에 포함시키는 것이 옳다. 약사 단체가 겉으론 이런 주장을 하지만 결국은 약국의 매상이 줄 것을 걱정해서란 지적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의약품 정책을 담당하는 복지부 주무과장이 공청회에서 한 이야기도 놀랍다. “새벽에 아프면 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면 되고, 최소한의 가정상비약을 갖추면 (해결)된다”며 저녁 때 약을 못 사는 것을 당연하게 얘기한다. 이어 “제가 ‘피투성이’ ‘총알받이’가 되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방안을 제출해 달라”는 얘기까지 했다. 그는 영리법인 약국을 도입해 경쟁을 촉진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약사들이 임금근로자로 전락해 자긍심을 잃는다”고 약사를 대변했다. 그의 이런 생각이 개인이 아닌 복지부 전체의 생각이라는 것이 문제다.

복지부가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국민의 편의와 건강이다. 약사의 존엄성이나 약국의 매출은 그 다음 일일 것이다. 약사도 마찬가지다. 소비자 편에 서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은 수퍼나 주유소에서 약을 판다. 이렇게 파는 약이 10만 종을 넘는다고 한다. 영국·독일·홍콩은 물론 최근에는 일본도 소매점에서 취급하는 약의 범위를 확대하는 추세다. 복지부와 약사들은 소비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최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전국 성인 2000명으로 대상으로 조사를 해봤더니 66.5%가 약국 외에서 약을 판매하는 것에 찬성했다고 한다. <조인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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