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원격진료는 의료선진화를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의료계와 충분히 상의해 도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지난 19일 취임 1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갖고 “하루가 멀다하고 원격진료 관련 기술이 발전되고 의료환경이 변화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장관은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에선 “원격의료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소신을 피력했었다. “서비스산업 발전 및 육성 기본법에서 의료산업을 제외시켜야 한다”고도 했었다. 원격의료를 실시하면 대형병원만 살아남고 동네의원은 죽는다는 논리였다. 또 의료 분야를 서비스산업으로 지정하면 병ㆍ의원이 영리병원으로 되기 때문에 이 법안도 반대한다고 했다.

박 장관의 콱 막힌 의료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에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민간보험사에 의료 빅데이터(Big Data-대용량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시키겠다”고도 했다. 이 때문에 빅데이터를 활용해 보험상품 개발 등 업무를 수행하는 민간보험회사들이 당황했다. 빅데이터를 이용해 한국인에게 맞는 신약개발을 구상 중인 제약사나 바이오 연구진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박 장관의 원격진료 등에 대한 입장이 바뀌는데 딱 1년이 걸렸다. 박 장관의 원격의료에 대한 이해의 속도가 이 정도니 앞으로 이 제도가 본격 시동이 걸리기까지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현재 법과 제도로 원격의료 도입을 규제하고 있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원격의료는 환자가 병원에 가지 않고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ICT) 기기를 활용해 진료도 하고 의사로부터 처방도 받는 전혀 새로운 진료 체계다. 원격의료는 의료와 ICT 기술을 융합한 4차산업기술 혁명의 선두주자다. 이미 미국과 일본은 진료와 관련 기기 개발 산업에서 일자리가 폭증하고 있다는 뉴스도 나온지 오래됐다. 의료 분야에서 대면진료만을 고집함으로써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한다는 독일도 2010년대 들어 원격진료를 도입함으로써 의료 분야의 신세계를 열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의 원격의료시장은 매년 평균 9.8%의 성장세를 보여 지난해 18억달러, 2022년엔 3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캐나다는 1175개 지역에 5710개의 관련 시설을 구축해 이미 전 인구의 21%가 원격진료의 혜택을 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도 박근혜 전 대통령 정부가 추진하던 섬지방 및 산간오지의 만성질환자와 의료기관 간 시행 중인 시범사업에서 단 한발짝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세계의 ICT와 의료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한국이 원격의료에서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의료기기 규제 혁신 발표회에서 “안전성이 확보된 의료기기는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의 벽을 대폭 낮추고 시장 진입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료기기 분야만 규제가 철폐된다고 해서 의료 관련 4차산업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원천적으로 의사와 의사 간 원격의료뿐 아니라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가 선행돼야 가능한 것이다. 개인의 인적 정보를 제외한 환자의 질병 관련 정보도 관련 기관 간에 공유돼야 한다. 이는 의료정책 입안과 정책시행자인 복지부장관의 원격의료에 대한 깨어있는 인식과 소신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저작권자 © 메디소비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