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시작되는 각 대학병원의 레지던트 채용을 앞두고 일부 대학병원에서 선배 레지던트들이 입국(入局)비 명목으로 거액의 금품을 요구하고 있어 이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일보는 최근 이같이 보도하고 성형외과와 피부과 등 소위 인기있는 학과의 레지던트가 되려면 보통 1000만~2000만원의 채용 대가를 선배들에게 줘야 한다고 밝혔다. 성형외과는 최고 1억원의 상납금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돌고 있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의 경우 정형외과 레지던트가 되려면 1000만원, 신경외과는 300만~500만원이 든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수입좋은 학과를 선택했으니 전공학과에 기여하라”는 무언의 뜻이 담겨있다고 했다. 이같이 걷히는 돈은 보통 전공학과의 국(局)회식비 등 운영비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사용 후 남은 돈의 행방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입 레지던트들은 이 돈의 행방에 대해 선배들에게 물어 볼 수도 없다고 했다. 대선배인 4년차 레지던트가 후배의 근무배정권을 갖고 있어 자칫 밉보이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식 기회가 잦은 학과에선 신입 레지던트가 담당교수의 대리기사 역할도 하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의사가 되는 길이 그만큼 험난하다. 오죽했으면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전문의가 지난 3월 의사사회의 비리를 낱낱이 적어 유서로 남기고 자살을 선택했겠는가.

레지던트 채용을 조건으로 한 이러한 금품 상납 비리는 어제 오늘 비롯된 것이 아니다. 18년 전인 1990년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도 레지던트 채용을 조건으로 병원 간부들이 금품을 요구해 인턴과정 전공의 26명이 집단 출근 거부 소동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상납 비리를 원천적으로 근절하겠다는 약속을 하도록 병원 측에 요구해 인턴 전원이 출근함으로써 집단 출근 거부 파동은 가까스로 수습됐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지금도 이름있는 대형병원에선 레지던트 채용 비리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조선일보의 보도로 확인된 것이다 대한전공의협회는 이에 대해 “정확한 통계나 신고 건수가 없을 만큼 이러한 레지던트 채용 비리는 일상화된 문화가 됐다”고 한숨지었다. 근절되지 않는 ‘적폐 중 적폐’라고 했다.

전공의협회 관계자들은 이러한 비리 근절이 그리 어려운 게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해당 학과의 교수와 고참 레지던트들이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잘라낼 수 있는 비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대학병원에서 고참 의사의 아들이 레지던트에 지원하자 그 날로 이러한 비리가 순식간에 사라진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고 했다.

이러한 레지던트 채용 비리가 모든 유명 병원에서 빚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극히 일부 병원과 일부 과(科)에서 일어나는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일부의 비리라도 전체 의사의 일로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다. 극히 일부의 일로 전체 의사사회를 욕되게 해서야 되겠는가. 보건당국은 사전 비리 예방책을 세우고 의료계는 의사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스스로 비리 근절 의지를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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