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의학계는 우울증의 조기 진단을 위해 생체표지자(biomarker : 장기 기능이나 건강 상태를 측정하는 추적물질)를 발견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

우울증 환자에게서 정상인보다 염증성 물질의 분비와 농도가 증가한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염증과 우울증의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는 생체표지자는 찾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혈중 ‘아디포넥틴(adiponectin)’의 농도가 높을수록 노인 우울증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기웅(사진) 교수팀은 체내에서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물질인 아디포넥틴의 농도가 높은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5년 뒤 우울증 발병 위험이 약 11배 가까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인체에서 가장 풍부한 항염증물질 중 하나인 아디포넥틴에 주목했다. 아디포넥틴은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단백질로 염증을 차단하고 억제하는 항염증성 물질이다. 동맥경화, 심장병과 같은 염증성 질환의 위험을 낮춰주는 ‘좋은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물질이 우울증의 생체표지자로 활용 가능한지 확인된 연구가 없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먼저 서울시 및 성남시에 거주하는 65세 이상의 노인 중 기분장애를 진단받지 않은 633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설정했다. 모든 대상자의 혈액을 수집해 혈중 아디포넥틴 농도를 측정, 5년 후 구조적 인터뷰를 통해 우울증 발병 여부를 살펴봤다.

혈중 아디포넥틴의 농도에 따라 633명의 노인을 211명씩 상위, 중위, 하위 세 그룹으로 분류해 나눴을 때, 상위 삼분위 그룹의 혈중 아디포넥틴 농도는 16.34μg/mL였으며, 하위 삼분위 그룹은 3.54μg/mL로 확인됐다.

이후 5년 뒤 우울증의 발병 위험성을 분석한 결과, 혈중 아디포넥틴 농도가 상위 삼분위에 해당하는 노인들은 하위 삼분위의 노인들에 비해 우울증 발병 위험이 11배 가까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 참조>

이에 대해 연구팀은 “노년기가 되면 우리 인체는 우울증이라는 질환이 생기기 전, 이를 막기 위해 미리부터 염증 반응을 억제할 수 있는 항염증물질의 분비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나이가 들어 노년 우울증이 생기려 할 때 우리 몸 속에선 다양한 염증성 물질들이 증가하고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데, 그만큼 염증을 억제하기 위한 항염증물질(아디포넥틴)도 동시에 증가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울증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환자를 직접 대면해 평가하는 것 외엔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없다. 또한 발병하기 전 미리 예측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 예방하기 위한 치료를 적용하기에도 어려움이 많다. 더욱이 노인에게 나타나는 우울증은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기능 수준, 삶의 질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지만 젊은 연령보다 증상이 모호해 치료의 기회가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웅 교수는 “이번 연구는 대표적인 항염증 물질인 아디포넥틴을 우울증의 조기 진단에 활용할 수 있음을 최초로 규명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전문의의 우울증 진단 및 평가를 보조하고 예방적 치료나 개입을 판단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가까운 미래엔 다양한 생체표지자를 활용해 간단한 혈액검사만으로도 우울증을 예측하고, 나아가 조기에 예방할 수 있는 시대도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임상 정신의학 저널’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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