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의 역사를 가진 국내 최대 산부인과 전문 ‘제일병원’이 최근 폐원키로 결정하고 1월 중 법정관리를 신청한다는 소식이다. 법정관리 후 회생 절차를 밟을 것인지, 아니면 파산을 선언할지에 대해 의료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제일병원은 최근 홈페이지에 ‘병원 사정으로 당분간 검사 일부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검사를 제외한 약 처방과 재진료만 가능합니다’라고 쓰인 안내문을 실었다.

제일병원은 1963년 처음 개원한 이후 한때 산부인과 전문의 40명이 근무하는 아시아 최대 최고의 산부인과 전문병원이었다. 이러한 제일병원이 폐쇄에 이른 것을 두고 의료계는 “산부인과 병원 중 가장 늦게 폐원하는 전문병원일 줄 알았는데···”라며 아쉬움섞인 탄식을 했다.

제일병원이 문을 닫게 된 이유는 복합적이다. 첫째, 직접적인 이유는 경영진의 부실경영이다. 제일병원은 지난 2004년만 해도 한달 1000여명의 산모가 입원해 출산하는 아시아 최고 최대 산부인과 전문병원이었다. 그러나 국내 저출산의 영향으로 지금은 한달 출산 건수가 300명으로 감소했다.

그런데도 경영진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3차례에 걸쳐 교육수련원, 여성암센터, 희망원 등을 건축한다는 명분으로 1000억원을 담보대출받았다. 무리한 투자라는 주장이 곳곳서 터져나왔다고 했다. 또 대출금 중 당시 이모 이사장이 수백억원을 횡령해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병원 운영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는 것이다.

둘째, 병원 폐원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출산아 감소다. 개원 당시 거의 3%에 육박했던 국내 여성의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동안 낳는 신생아 수)이 해를 거듭할수록 급락한 것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18일 발표한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0.96~0.97명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여성 1명이 평생 1명도 낳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합계 출산율이 0%대로 떨어진 것은 한국이 세계 처음이다. 충격적인 일이다.

셋째 원인은 이러한 저출산 추세에도 제일병원이 제대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출산 위주의 병원에서 여성 전문 분야와 산후조리 부문 등 진료 영역에 변신을 꾀했더라면 그래도 활로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의료계의 추론이다.

넷째는 지속적인 출산률 저하에도 산부인과 병원과 전문의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책이 없는 것도 산부인과 몰락의 원인이다. 분만실을 운영하려면 최소 필요 인력이 7명이나 된다. 산부인과 전문의, 소아과 의사, 응급상황시 대비위한 마취과의사, 간호사, 간호조력자, 신생아케어 직원, 산모 식사 제공 직원 등이다. 그만큼 인건비가 많이 소요된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과 야간수당 부담이 가중돼 분만실 운영은 해가 갈수록 어려운 환경에 빠져들고 있다. 분만사고시 산부인과 의사에 대한 실형 처벌과 낮은 진료수가로 산부인과 의사 지망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출산율 0% 시대에 산부인과 회생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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