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변신만큼이나 약의 변신은 드라마틱하고, 아울러 무죄이다. 고혈압을 치료하려던 비아그라는 발기 부작용으로 단숨에 뭇 남성들의 워너비로 등극했고, 전립선 비대를 막으려던 프로페시아는 발모 부작용으로 수많은 탈모인에게 희망이 됐다. 여기에 하나 더,최근 당뇨 주사제가 비만 치료제로 변신하면서 다이어터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출시 4개월 만에 품절 사태를 빚었고, 이후 한국에 입고될 때마다 완판 신화를 이어온 '삭센다'는 이미 비만 클리닉 No.1 처방약이 됐다.

더 저렴한 병원을 찾아 헤매는 삭센다 유랑객들이 생겼으며 인터넷 중고 거래도 성행하고 있다. 자가 주사를 해야 하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다이어터들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 약은 도대체 뭘까?

삭센다는 애초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약이다. 우리가 음식물을 섭취하면 장에서 'GLP-1'이라는 물질이 분비돼 식욕이나 음식 섭취를 억제시킨다. 삭센다는 이 GLP-1이라는 물질과 유사한 구조로 식욕을 조절하는 뇌의 일정 부분에 작용해 포만감을 높이고 공복 느낌을 낮추는 방식으로 체중 감량을 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역시나 삭센다의 체중 감량 효과이다. 2015년 노보노디스크(삭센다 제조사)의 임상시험 결과는 대대적으로 회자됐는데,삭센다가 무려 체중의 10%를 감량시켜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결과는 다이어트와의 끝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광고 글에서 주장하는 삭센다의 체중 감량 효과가 이토록 매력 덩어리인 것이 맞는지, 2015년에 발표된 임상을 자세히 살펴보자.

1년에 걸쳐(56주) 총 3731명을 대상(당뇨병이 없고 체질량지수가 30 이상이거나, 27 이상이면서 고지혈증 또는 고혈합 등이 있는 비만환자)으로 시행된 이 임상의 결과는 많은 뉴스에서 ‘삭센다, 10%의 체중 감량 성공!’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하지만 첫째, 본 임상 대상 환자의 평균 체중은 106.2kg이었고 체질량지수는 38.3이었다. 한국 여성 평균 키를 162cm로 가정했을 때 이 체질량지수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몸무게가 100kg을 넘어야 한다.

즉, 삭센다의 효과는 국내 대다수 삭센다 유랑객들의 몸무게로는 범접하지 못할 평균 체중에서 시험된 것이고, 최소 70kg 이상 되는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둘째, 평균 106.2kg 환자들은 투약 1년 후 평균 8.4kg을 감량했다. 삭센다를 투여한 환자 중 63.2%가 체중의 5% 감량, 33.1%가 10% 감량에 성공한 것이고, 이것이 그 화려한 뉴스 타이틀의 실체이다.

이 숫자들이 대략 70kg 이하의 일반인에게는 입증되지 않은 수치라고 해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떨쳐낼 수 없는 유혹일 수 있다.

그렇다면 삭센다의 안전에 대해 살펴보자. 삭센다는 전임상 시험에서 쥐에서 갑상선암을 유발했고 이에 갑상선 수질암 병력이 있거나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사용 금기이다.

췌장암의 위험을 10배 상승시키는 췌장염 비율도 4배나 높아졌다. 젊은 여성의 사용 빈도가 높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기형아 출산, 유산 위험 또한 높아졌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할 점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비만클리닉은 물론이고 피부과, 내과 등 온갖 의원에서 ‘평생 맞아도 아무 부작용 없는 약’, ‘혈압도 떨어뜨려주고 고지혈증도 내려주고 일석백조의 다이어트 치료제’로 삭센다를 광고하고 있다. 체중이나 체질량지수 확인은 고사하고 최대 금기 사항인 갑상선 병력에 대한 질문도 없이 무작위로 처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1890년대부터 다이어트 약물들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갑상선 호르몬부터 레이보우 필스, 펜펜, 최근의 리덕틸까지 수많은 다이어트 약들이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심장판막질환, 뇌졸중, 심근경색 등 치유못할 상처들을 남기고 떠나갔다.

아직 삭센다는 알 수 없다. 갑상선암과 췌장염, 담석증까지 논란이 산재할 뿐이다. 약에도 생명이 있어 태어난 지 얼마 되지않은 신생아는 위험을 확증하기 어렵다.

다만 삭센다는 위험을 ‘우려’할 만큼의 데이터가 충분하고 더군다나 ‘다이어트 약’이 아니라 중증ㆍ고도의 비만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 ‘비만치료제’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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