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병원에서 전공의들을 상대로 여전히 입국비(入局費)라는 명목으로 수십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금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ㆍ회장 이승우)는 지난해 12월 2주간에 걸쳐 전국의 전공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입국비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이같은 내용을 지난달 28일 언론에 공개했다. 대전협은 이번 조사에서 전국 70여 수련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 500여명이 적극적으로 응답해왔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근무하는 전공과에 입국비 문화가 있느냐에 “그렇다”고 응답한 전공의는 37.1%였다. △다른 과에 입국비가 있다는 말을 들어봤는가라는 질문에는 77.1%, △입국비가 있다는 말을 들어봤는가라는 질문에는 96.1%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입국비 액수는 100만~1000만원이 47.1%, 50만~100만원이 16.7%였고 5000만원 이상도 3.3%나 됐다. 지난해 10월 한 중앙 일간지가 수련병원으로 지정된 병원에서 신입 전공의들에게 거액의 입국비를 받는다고 보도한 내용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수련의를 대상으로 돈을 받는 입국비는 의료계의 케케묵은 적폐다. 1990년 부산의 한 병원에서 인턴 과정 전공의 26명이 입국비를 납부할 수 없다며 출근 거부 투쟁을 벌인 적도 있다. 또 지난해에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전공의가 입국비 비리를 낱낱이 적은 유서를 남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다.

이러한 입국비는 대부분 고참 레지던트들이 주도해서 신입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받는다고 한다. 본인들이 겪은 악습을 후배들에게 강요하는 셈이다. 입국비의 사용처는 대부분 회식비라고 했다. 회식비 외에 사용처는 불투명하다. 그렇다고 후배 전공의들이 고참 선배들에게 구체적으로 사용처를 따져 물을 수도 없다. 선배들에게 밉보이면 분과 배정시 자신이 원하지 않는 분과로 배정받는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튀게 행동한다”며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현재 대부분 수련병원(72.3%)들은 병원 측에서 과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수련의들은 이러한 지원비의 혜택을 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은 불과 52.4%에 그치고 있다. 지원비가 모라라거나, 아니면 중간에서 어디론가 새나간다는 의심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입국비를 추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수련의들의 말이다. 해당과 교수와 고참 레지던트 선배들이 맘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없앨 수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입국비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해묵은 관행과 적폐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수련의는 의료법에 의해 수련 시간도 주(週) 80시간으로 제한돼 있다. 다른 직종은 주 52시간 근무라지만 이들은 이 법 규정에 따라 주 80시간으로 연장된 셈이다. 이처럼 격무에 시달리는 수련의들에게 관행이라는 이유로 입국비까지 걷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의료계엔 격무에 시달리다 설날 연휴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지난달 4일 밤새워 근무하다 과로로 숨진 국립중앙의료원의 윤한덕 응급의료센터장과 같은 숭고한 정신의 의사들이 숱하게 많다. 이러한 희생적인 의료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도 입국비 추방을 위해 의사사회가 스스로 모든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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