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몇 십년 동안 소득이 증가하면서 우리나라 가계의 식료품비 지출구조가 많이 변화하였다. 일단 전체 소비지출액 중 식료품비의 지출비율이 감소하였고 외식비가 식료품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외식비가 증가하였다. 또한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의 소비, 과일소비가 늘었고 소비하는 식품의 양보다 맛있고 보기 좋은 식품, 안전한 식품, 건강에 좋은 식품을 지향하는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안전하고 건강한 식품에 대한 요구가 거세다. 광우병 소와 멜라민 과자, 화학약품으로 만든 달걀 등에 관련된 기사가 미디어에 등장하면서 식품안전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트렌드와 발맞추어 유기농 식품이나 인증식품, 제철식품, 자연식품 등을 표방한 다양한 농산물이나 가공식품이 개발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일상적인 소비, 특히 식품 소비 부분에서의 안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비자들이 소비하는 의류, 주거, 교통, 가전, 모든 것이 안전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먹을거리는 모든 소비자가 예외없이 매일매일 소비하는 대상인데다가 그 효과가 신체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매식을 자주 하고 맛이나 영양보다 음식제조(부엌일?)의 편리함을 먼저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조차도 자동차를 살 때보다 한 끼 먹을거리를 택하면서 더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소비자가 진정으로 안전한 먹을거리를 소비하고 싶다면 우려나 고민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선 소비자들은‘어느 수준에서 얼마나 안전해야 진정으로 안전’한 것인지에 대해 소신을 가져야 한다. 먹을거리는 그 재료를 생산하거나 옮기거나 가공하거나 보관하는 모든 과정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과 만난다.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진정으로 안전을 보장받은 먹을거리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매 단계에서 100%의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우리는 한 끼에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국가에서 설정한 먹을거리의 안전에 대한 기준은 바람직한 안전수준과 그것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현실적으로 절충한 것이다. 예를 들어 유기농이 그렇지 않은 농산물보다 물론 더 안전하지만 유기농산물 생산비가 높기 때문에 농약사용을 어느 선까지는 허용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와 정부가 정한 안전기준을 수용하고 신뢰해야 한다. 물론 그 정보가 사실이 아닌 경우가 종종 드러나고 있고 또 그 기준도 해당 식품이 100%의 안전하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의 기술수준과 소비자들이 지불해야 할 비용과 소비자들의 건강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다. 정부 외에도 많은 단체들이 순수한 우려를 표명하고 소비자를 도우려고 하지만 사실 소비자들은 선동적이고 극단적인 몇몇 정보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기 쉽다. 그 극단적인 사례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소비자들은 그 위험의 발생확률과 그 위험방지를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을 동시에 냉정하게 고려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먹을거리의 안전기준을 설정할 때 ‘절대적인 안전’보다 우리의 상황에서‘현실적으로 수용할만한 안전’수준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전한 먹을거리를 원하는 소비자가 해야 할 두번째 일은 ‘안전’과 관련된 문제에서 똑똑해지는 일이다.

사람들은 친환경식품이나 유기농 식품이 더 좋다고 알고 있지만 정작 ‘친환경’이나 ‘유기농’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비료와 농약, 제초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소비자도 많다. 지난 해 소위 ‘내츄럴’이미지를 표방한 옥수수차에 식품첨가물이 들어가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그 소비량이 급감한 적이 있는데 이 또한 시중에 유통되는 식품에는 방부제나 보존제가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간과한 결과이다.

소비자는 원하는 다양한 안전수준에 대한 소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안전수준을 판단하기 위해 알고 있어야 할 정보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먹을거리의 안전문제에 늘 불안해하면서도 정작 수퍼마켓에서는 포장이 그럴 듯한 아무 거나 집어드는 소비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가까운 시일내에 쟁점이 될 유전자 변형 농산물에 대해 생각해보자. 유전자재조합 식품이 100%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물론 해롭다는 증거도 아직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 변형 또는 유전자 조작이라는 단어에 일단 거부감을 갖는다. 반면 많은 사람들이 의료분야에서의 유전자 조작은 놀라운 생명공학 기술로 간주한다.

의료와 식품은 물론 성격이 서로 다른 분야이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시장 논리가 적용된다는 점에서는 같다. 유전자재조합기술을 개발하지 않으면 농산물 생산에 점점 더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게 될 것이고 이 기술을 선점한 다른 나라나 기업에 우리 시장을 잠식당할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의 종자시장은 거의 외국기업에 넘어간 상태이다. 이처럼 먹을거리의 안전에 대한 논의는 어느 한 측면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국민적 논의에서 사회적으로 수용할만한‘안전’수준을 정하는데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주제가 유기농 식품이든 무첨가물 식품이든 비유전자재조합 식품이든간에 무엇보다도 소비자가 그 먹을거리의 안전수준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 안전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소비자는 정말로 똑똑해져야 한다. .<가톨릭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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