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이 24일 병원협회에 진료 시작 단계에서 내원자의 신분증을 확인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내원자가 환자 본인인지를 확인해 달라는 협조 공문이다. 이러한 협조 요청은 최근 한국인과 외국인을 구분하기 어려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중국인과 재외동포 등이 한국인 친척 등의 주민등록번호를 외워 진료를 받을 경우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돼 건보재정이 줄줄 새는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말 현재 국내 등록 외국인 수는 175만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97만명은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다. 나머지 78만명 중 43만명은 6개월 미만 체류자로서 건보 가입 자격 미달이고 35만명은 불법체류자인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들 건보 무자격자 78만명은 의료혜택 사각지대에 있고 이들이 주로 건보재정 ‘먹튀’의 요주의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진료 시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선 병ㆍ의원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제시하면 자동으로 보험혜택을 받게 돼있다. 이러한 제도상 허점 때문에 한국인과 외모가 비슷한 중국인과 재중 동포, 재외 교포들이 나이가 비슷한 친척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제시하고 건보혜택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지난해 5월 건보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 재외동포 A씨는 지난 2015년 매월 7만9000원씩 건보료를 납부하고 10개월간 항암치료와 허리디스크치료를 받았다. A씨가 10개월간 납부한 보험료는 약 80여만원 밖에 안됐으나 건보재정에서 A씨에게 지급된 보험혜택은 모두 1억1700여만원에 달했다고 한다. 추적조사 결과 A씨는 치료후 곧바로 출국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5~2017년 3년동안 A씨와 같은 먹튀 외국인 환자 수는 무려 3만2000명에 달했다고 했다. 2017년 한해동안 먹튀 환자들이 축낸 건보재정은 2050억원이었다. 2012년 778억원에서 5년 사이 무려 2.6배나 늘어났다.

정부는 외국 국적자들의 ‘먹튀’ 방지를 위해 오는 7월16일부터는 건보 가입 조건을 지금보다 까다롭게 해 현행 3개월 이상 국내 체류자에게서 체류 기간 6개월 이상된 거주자로 제한했다. 이같이 조건을 까다롭게 했기 때문에 당분간 한국인으로 위장한 외국인이나 재외동포 환자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게 당국의 예상이다. 따라서 가짜 한국인 환자를 가려내는 방법은 진료 시작 단계에서 신분증을 확인하는 길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정부는 우선 건보재정 지출액이 많은 종합병원 등 대형병원에서 이러한 환자 신분증 확인 작업을 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동네의원의 경우 피해도 적고 사무량 증가에 따른 번잡성 때문에 당장 환자신분증 확인 작업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병ㆍ의원들이 당장 사무량이 늘어나기는 하겠지만 국내 건보재정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당국의 협조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것이 건보제도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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