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재벌은 규모는 작아도 실속이 있다.

한치 앞이 안보이는 IT나 산업분야와 달리 제약 분야는 발전 속도가 꽤 느리다. 인스턴트 산업이 아니어서 속도감(성장)은 떨어지나 느린만큼 리스크가 적다.

더욱 실속있는 것은 제약 재벌이 정치·사회적으로 주목받을 일이 없다는 점이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곤욕을 치루는 10대 등 상위권 재벌과는 사정이 다르다.

내노라하는 재벌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 개혁의 도마 위에 오르기 일쑤다.

현대자동차 정몽구,SK 최태원, 한화 김승연 회장이 그랬고,삼성 이건희 회장도 미묘한 시기마다 정치 역풍을 피해가지 못했다.

재벌은 늘 불안하다. 재벌이 평소 눈치 볼 일이나 아쉬워할 일이 뭐가 있겠나. 그런데 유일하게 눈치를 보는데가 정치권이다.

과거 30대 재벌이 청와대로 불려가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는데,이는 신변 보증내지는 당대 정치권과의 우호적 교류의 상징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재벌의 단죄가 단골메뉴로 등장했지만 제약 재벌은 예외였다.

무엇보다 사회적으로도 실속있다. 2·3세로 세습한다고 해서 누가 시비를 붙나,얼굴이 팔려 일상 생활에 지장을 받나,평소 호사부리면서 누릴 거 못누리고 사나.

위장약 겔포스로 유명한 보령제약. 연 매출액이 2700억여원(2009년 기준)이 채 못된다. 상위 대기업의 계열사 매출도 안된다.

국내 기업 자산규모로 보면 1000등쯤 하고, 주가총액으로는 300백위권을 넘나든다.

이 기업이 50년을 넘었다. 50년 넘은 기업이 연 매출 3000억원도 안된다고 하면 한심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단돈 오백원·천원짜리 팔아 올린 매출이어서 수천·수백만원짜리 자동차·가전팔아 수십조 매출 올리는 기업과 단순 비교해선 곤란하다.

밑바닥 다져 커온 탓인지 대부분 제약사들은 연륜이 깊고 보수적이다.단단하고 알찬데가 있다. 부채비율은 낮고,대부분 성곽같은 사옥도 있다.

그래서 제약업에서 적자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 이런 판이 깨져 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주주의 주식보유액도 얼마 안되나 대주주가 대를 이어 권력 유지하고,호사부리데 굴지 재벌에 뒤질 게 없다.

제약은 세금인 건보재정에 기대어 사는 탓에 정부 간섭과 규제가 심하고,성장도 굼뜨다.

뒤집어보면 시장이 보장돼 있어 경기가 나빠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리스크가 적고,영속성이 뛰어난 것이다.

그동안 30대 재벌은 숱하게 부침을 거듭했지만 제약 재벌 망했다는 얘기는 드물었다. 국내에 100년,50년 넘은 제약기업들이이 수두룩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인데,생명력있다는 얘기다.

제약은 작게 먹고,길게 사는 업종이다. 지금 제약판에는 430여 업체들이 바글거리며 피튀기는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제 제약 재벌도 굵고,길게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요즘 멀리서 제약판의 구각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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