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를 맞는 각국 의료계에서 원격진료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 기간에 환자들이 병원을 갈 수 없어 전화나 인터넷으로 진료를 보고 처방을 받는 새로운 진료 패턴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원격진료 확대 논의가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에서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진료의 편리성과 부작용 찬ㆍ반 양론 속에 의료 전달체계의 대변혁의 '쓰나미'가 심해 밑바닥에서부터 힘을 키워 나가고 있다.

한국 원격의료 찬성 측 마저도 "보완적 수단 도입"

우리나라 의사들은 원격진료를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코로나19 이후 의료계 내부에서 찬ㆍ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정의당 배진교 의원과 무상의료운동본부가 최근 국회도서관에서 원격 의료 도입에 대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원격의료 확대에 대한 반대가 우세한 가운데 원격의료 확대에 찬성한 측에서도 원격의료가 대면진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 보완적 수단으로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격의료 반대 측의 논리는 보건의료정책으로 효과와 유효성이 적고 경제 모델로서도 편익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는 "원격의료는 코로나19 상황뿐 아니라 의료 전반에서 환자 생명과 연관해 고려해야 하는 문제"라며 "인력이나 시설 확충, 이동수단 개선 등 의료 접근성 개선 정책과 비교해 우선 순위가 높지 않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원격의료 활용에 따른 환자 편리성, 의료 질 향상 등은 전혀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며 "도입을 위한 재정투입과 노력에 비해 적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조현호 의무이사는 ”현재와 같이 아무런 법과 제도적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의료사고가 급증하고 의료의 질이 저하될 가능성이 높다“며 ”상급종합병원과 경쟁하고 있는 1차 의료기관들은 모두 몰락하게 되는 의료전달체계 붕괴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부작용을 지적했다.

                                                국회에서 열린 원격 의료 도입 토론회.

반면 가톨릭의대 윤건호 내분비내과 교수(당뇨병학회 이사장)는 ”원격의료는 많은 논문과 실증 사업 등에서 장기적 효과까지는 증명하지 못했지만, 아예 효과가 없다고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원격 모니터링 등을 통해 환자가 얼마나 스스로 질병을 이해하고 관리하게 하느냐에 따라 효과성이 결정된다"며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원격의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어 도입 이후 성숙 단계를 거치지 못한 채 처음부터 효과가 없다고만 치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특히 윤 교수는 원격의료 도입으로 대형병원에 환자 쏠림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반대 논리를 펼쳤다. 윤 교수는 “대형병원 의사들이 원격 진료를 하다보면 외래환자를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줄어 대면 환자가 현재보다 절반 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대면 진료가 반드시 기본 전제가 돼야 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김국일 과장은 "원격의료는 국민건강 증진과 의료접근성 향상, 감염 예방 등 목적으로 추진돼야지, 특정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추진해선 안된다"며 "복지부는 대면 진료가 반드시 고수돼야 하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원격 의료를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코로나19 겪은 노인층 진료 패턴 변화 여부에 관심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디시전 리소스 그룹(Decision Resources Group) 조사에 따르면 미국 의사들이 코로나19 영향으로 원격진료 도입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월 초~4월 중순까지 조사한 결과 의사 21%가 지난 1년간 원격진료를 한 적이 있었다고 응답했다. 이는 지난해 9%에 불과한 것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이런 변화는 특히 면역 억제 환자를 치료하는 전문 과목에서 두드러졌다. 류마티스 전문의는 1년전 25%에서 46%가 원격진료를 했다고 답했고 종양 내과 전문의는 7%에서 48%로 늘었다.

                                                                                                                진료 과목별 원격 진료 도입

5년 전, 원격진료가 새로운 기술로 부각될 때 미국 의사의 47%가 관심을 보였고 13%는 이미 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원격진료 도입이 늦어지는 것은 미국의 의료시스템이 세분화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는 경향이 짙다. 원격진료를 환자에게 직접 제공하거나 전국 규모의 대형 회사와 의사가 공동으로 원격진료하는 스타일, 또 약국, 병원, 보험사가 손을 잡고 직접 운영하는 시스템까지 다양한 원격진료 플랫폼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의사들은 외부의 DTC(Direct To Consumer)형 서비스나 약국 등 외부 조직이 제공하는 서비스보다 자기 병원에서 직접 실시하거나 본인 주도로 협업하는 방식을 압도적으로 바라고 있다.

또 하나의 추세는 젊은층 주도의 원격진료에 대한 변화다. 작년 조사에서 34세 이하는 3명 중 1명이 원격진료를 이용했지만, 65세 이상은 1%에 그쳤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노인 사망률이 높아지면서 원격진료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지금까지 이어져왔던 젊은층 위주의 원격진료 패턴이 달라질 수 있다.

                                               연도별 원격 진료 이용 및 관심도

일본, 재진료 산정 횟수 작년보다 1만% 이상 증가

코로나19로 일본에서 전화나 인터넷 등 원격진료 환자가 크게 늘어나 ‘포스트 코로나’를 맞이하는 의료계의 진료 변화의 새 바람이 예상되고 있다.

일본 의사회는 지난달 회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료기관 경영 상황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 조사는 작년과 올 3~ 4월의 보험 진료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실시했다. 5월7일에 각 광역단체 10~20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655개 시설(병원 120곳, 진료소 523곳 미상 시설 2곳)에서 답변을 받았다.

가장 큰 변화는 환자 수가 줄어들고 전화 등 원격 재진료는 엄청나게 늘었다는 것이다.

일본 의사회 조사에 따르면 4월 들어 전화 등을 통한 재진 환자가 크게 늘었다. 병원의 경우 재진 산정 횟수가 지난해 4월 114건에서 올해 1만3472건으로 무려 1만1717.5%가 증가했다. 보건소도 7613건으로 전년 1207건보다 530.7%가 늘었다. 재진료ㆍ외래 진료 산정 횟수에 대한 전화나 인터넷 등으로 받은 재진 산정 횟수의 비율은 병원은 0.02%에서 2.12%까지 증가했다. 진료소는 0.23%에서 1.69%까지 늘었다. 특히 내과에서는 전화 등 재진 산정 횟수의 비율이 2.44%로 늘었다.

실제로 전화 등 재진 환자 수가 증가했는지 물었을 때 일반 병원에선 42.1%가 ”크게 늘었다“라고 답변했다. 여기에 ”다소 늘었다“라고 응답한 병원을 합치면 70%가 재진 환자 수가 늘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진료소에서도 ”크게 늘었다“(12.9%), ”약간 늘었다“(33.4%)를 합하면 절반 이상이 ”늘었다“고 답했다. 진료과별론 내과는 절반 이상이 늘어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 특례적으로 실시된 전화나 온라인을 통한 초진은 병원에서 11건, 진료소에서 146건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번 조사 결과는 3월 조사 때보다 진료가 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의사회 마츠모토 모치(松本吉郎) 상임 이사는 "너무 힘든 결과"라는 인식을 나타냈다. 마츠모토 이사는 “2차 추경 예산에 의료계 지원도 포함돼 있지만 이것은 원샷 같은 일회성”이라며 “추경만으로 충분한 지원이 될 수 없어 지속적인 지원을 요구한다”고 호소했다.

설문조사 결과, 병원 등 각급 의료기관의 4월 초 진료가 전년 같은 달보다 30% 이상, 재진료는 1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의심 환자 진찰은 병원에서 56.7%, 진료소가 35.8%였다. 4월16일에 코로나19 비상사태 선언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초진료는 병원에서 전년 동월 대비 38.3%, 진료소에서 39.3%로 크게 줄었다. 재진료는 병원 11.8%, 진료소 14.0% 감소했다. 진료과별로 보면 이비인후과와 소아과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이비인후과 초진료는 전년 동기 대비 41.7% 감소, 재진료는 26.3% 감소했다. 소아과는 재진 환자도 크게 줄었고 초진료는 47.2%가 감소했다. 재진료 산정 횟수는 41.0% 급락했다.

                                             입원외 총건수ㆍ입원외 일수 자료=일본의사회

마츠모토 상임 이사는 ”이비인후과 환자에 대한 접근 차단 조치가 많았고 에어로졸 발생 위험이 있어 진찰 억제가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또 한편으로 주목 해야 할 것은 장기 처방전이 늘어난 것이다.

장기 처방에 대해선 ”늘었다“(크게 증가+다소 증가)는 응답이 병원은 65.8%, 진료소는 79.4%가 ”그렇다“라고 답변을 했다. 특히 장기 처방이 많은 대형 병원의 처방 일수가 증가하고 있다. 일본 의사회는 장기 처방이나 전화 등 재진이 증가하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국민의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이 줄어들까 우려를 표명했다. 일본 의사회는 ”건강이 위협받는 일이 없도록 국민에 대한 적절한 진찰 권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일본 의사회는 고정비 변동이 없다고 가정한 경우 의료 수익을 어림잡은 결과도 공표했다.

가장 경영이 어려운 곳은 입원실이 없는 진료소로 4월에만 평균 100만엔 적자를 봤다. 또 진료과별론 이비인후과가 47%, 외과가 20.9%가 적자를 봤다.

일본 의사회는 “원장 급여 삭감 등 고정비 절감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으로 봤을 때 대규모 경비 삭감이 단행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당장 운전 자금 확보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환자 수가 늘어나지 않으면 경영 유지가 매우 어렵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메디소비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