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된 것으로 의심돼 접종이 중단된 인플루엔자(독감)백신을 접종한 사람이 지난 2일 현재 2300명을 넘어서 모두 2303건(2303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한다. 또 이들 백신을 접종한 사람 중 12명이 오한에 메스꺼움, 고열, 몸살 등 부작용 증세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온에 노출된 것으로 의심돼 사용이 중단된 독감백신이 578만명분이라고 하니 앞으로 그 피해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또 백신 공급엔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4일 이같이 밝히고 현재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기관이 이번 독감백신의 상온 노출 사건을 계기로 백신 유통 과정 전반에 대해 개선 방향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사실 이번 독감백신의 유통 과정에서 냉장 보관해야 할 백신이 상온에 노출돼 변질될 우려가 발생한 것은 누구보다 이를 담당한 신성약품의 책임이 가장 크다.

신성약품은 독감백신 배송에 올해 처음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조달청의 입찰에 앞서 백신 생산업체와의 물량 확보 경쟁에서 기존의 다른 업체들이 검찰의 수사 문제로 정신이 없자 이 틈을 이용해 물량을 확보하는데 유리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백신 배송에 경험이 없는 신성약품이 무난하게 배송 업체로 선정됐다는 해석이다.

배송 업무는 생산 업체에서 광역 시ㆍ도까지 배송을 맡는 1차 하청 업체와 광역 시ㆍ도에서 기초지자체의 의료기관까지 배송을 맡는 2차 하청 업체로 나뉘어진다. 그런데 이번 독감백신의 상온 노출 사고는 이같은 복잡한 유통 과정에서 경험 부족과 감독 소홀로 인해 빚어졌다는 것이 당국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정부와 보건당국의 책임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정부가 감염질환에 대한 책임있는 행정을 목적으로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켜 출범시킨 것이 지난달 12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질병관리청(질병청)의 직원 수는 종전의 907명에서 1476명으로 무려 62.7%나 늘어났다. 질병청의 업무를 철저히 감시 감독한다는 명분으로 복지부 안에 차관직까지 하나 더 늘렸다. 그럼에도 결과는 이 모양이다. 결국 복지부나 질병청이 코로나 사태를 빌미로 조직 확대나 자리늘리는 데만 급급했지 효율적인 행정엔 신경쓰지 못했다는 것이 의료계의 지적이다.

이같은 지적은 독감백신의 관리 체계가 관련 행정기관의 영역 다툼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우선 의약품의 도매상 허가 기준은 복지부가, 의약품의 품질관리기준은 식약처가, 도매업체 허가권과 행정처분은 시ㆍ군ㆍ구청이, 백신의 보관과 수송 관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질병청과 식약처가 서로 간여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이러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질병청과 식약처가 각각 고유 업무에 대해 실질적이고도 독자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복지부가 자신의 권한을 과감하게 내려놓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와 업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독감백신의 유통 문제 하나 해결하지도 못하고 책임도 지려 하지 않는 것은 것은 정권의 불신만 초래한다는 사실을 정부가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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