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31명의 사상자를 낸 경북 경주의 관광버스 추락사고는 우리가 왜 노인 소비자보호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사고의 전말은 이렇다. 경주의 한 마을 노인 30명은 건강식품회사의 농장을 방문하는 조건으로 한사람 당 만원씩 내고 소위 ‘효도관광’을 떠났다.

당초 좀 더 비싼 관광상품을 이용할 예정이었지만 건강식품 판매업자의 기만상술에 혹해서 이런 조건의 여행상품을 선택했다고 한다.

여행 당일 이들은 온천욕을 하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예의 정해져 있는 코스대로 건강식품회사를 방문해서 건강식품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일행 중 상당수는 고가의 제품을 구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당초 ‘좀 더 비싼’ 여행을 선택했더라면 가지도 않았을 그 험한 고갯길을 돌아오다 버스가 추락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노인을 상대로 한 기만상술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지만, 실제로 이런 피해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무료로 효도관광을 시켜준다거나 경로잔치를 연다면서 고가의 상품을 강매하거나, 노인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악용해 효능이 입증되지도 않은 건강식품이나 의료보조기구를 판매하는 기만상술에 피해를 입는 노인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행위를 하는 사업자들은 노인들의 경우 소비자 권리의식이 희박하고, 해약절차를 잘 모른다는 약점을 교묘히 이용해 무조건 제품을 떠맡기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2008년 8월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절반가량이 불법 부당한 전화 또는 방문판매 행위에 접촉한 경험이 있으며, 이 중 16.1%가 실제로 제품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들 중 34%는 제품구입으로 인해 가족간 갈등을 겪었다는 것이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노인들의 경우 이런 문제는 종종 가정불화로 연결되고 종국에는 사회문제로 부각될 소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도 매년 텔레마케팅 사기 피해가 매년 수백억불씩 발생하고 있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이 노인 피해라고 한다.

노인의 안전문제도 주목해야 할 관심대상이다. 미국 국립안전위원회 통계에 의하면 2004년 가정내 추락사고로 인한 사망자 18,807명 중 80%가 65세 이상의 노인이었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노인을 위한 시설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우리의 경우는 더욱 심각할 것으로 추측된다.

분명 노인 소비자는 의식이나 환경면에서 일반 소비자와 큰 차이를 보인다. 우리도 이제 ‘고령사회(Aged Society)'를 앞두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취약한 노인 소비자를 별도로 구분해 그들에게 적합한 소비자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우선은 젊은층 위주의 상품설명서를 노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바꾸고, 표시도 크게 하는 등의 배려가 긴요하다. 또한 실버산업에 대한 노인 소비자의 욕구가 높다는 점을 감안해 정부 차원에서 실버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 지원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이외에 노인 소비자피해가 대부분 방문판매 또는 할부거래 등 특수판매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관련 법률을 보완해 65세 이상 노인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항을 두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노인들이 소비자 권리의식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노인학교에 소비자교육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것도 노인 소비자피해를 줄이는데 상당히 효과적일 것이다.

노인 소비자 문제를 더 이상 경로사상이나 전통적인 가치관에 의지해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지금 법과 제도로 그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옛 선인의 노래처럼 늙기도 서러운데 그들에게 소비자피해라는 짐까지 지워서는 안될 일이다. <한국소비자원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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