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제약사 영진약품은 한때 야심차게 개발하던 천연물 경구용 COPD(만성폐쇄성폐질환) 치료제(개발명 'YPL-001)'를 임상 2b상까지 진행했으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YPL-001은 천연에서 자생하는 산꼬리풀을 원료로 하여 개발한 천식 및 만성폐쇄성폐질환 치료제다.

지난 2017년 12월 YPL-001에 대한 미국 2상 최종보고서를 미국 FDA에 제출한 후 2018년 임상 2b상 프로토콜 개발까지 끝냈으나 후속 개발 소식이 나오지 않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사로의 기술 이전이 차질을 빚고 있다는 후문이다.

회사 관계자는 "YPL-001 기술이전을 추진하고 있으며 파트너사가 선정되면 임상 2b상의 조속한 진입과 함께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또 멀꿀나무 잎으로부터 개발한 소염 및 관절염치료제인 'YRA-1909'도 2017년 국내 임상 2상 진행해 지난해 9월 종료했으나 요즘엔 개발 소식이 깜깜 무소식이다. 

한때 제약계의 미래 먹거리로 주목을 받았던 천연물 의약품 개발 열기가 최근들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제약사들은 2000년대 들어 앞다퉈 천연물 의약품 개발에 뛰어들었다가 최근 수년 새 일부 제약사를 제외하고 대부분 연구개발을 중단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임상을 중단하고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이전을 추진하고 있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고 있다. 이때문에 주요 제약사들은 신약 파이프라인을 늘이고 있으나 천연물의약품 파이프라인 비중을 줄이는 추세다.

정부의 '제4차 천연물신약 연구개발 촉진계획(2020~2024년)'에 따르면 실제 천연물신약 비중은 2009년 19.5%, 2012년 23.1%로 올라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5년 21.6%, 2018년 10.8%로 급락 중이다. 이는 천연물 신약에 주던 약가나 임상 혜택이 없어지고 규제가 강화된데 따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지금까지 개발된 국내 천연물 의약품들은 SK케미칼의 '조인스정', 동아에스티의 '스티렌정', GC녹십자의 '신바로캡슐', 한국피엠지제약의 '레일라정', 구주제약의 '아피톡신주', 안국약품의 '시네츄라시럽' 등이 대표적이다.

◇천연물의약품 개발, 동아에스티ㆍ녹십자웰빙 등만 성과… 대부분 '답보'나 포기

대원제약은 10년 전부터 복합천연물 성분의 구내염치료제, 백년초 열매를 이용한 위염치료제, 감초추출물을 이용한 간염치료제, 대사성치료제 등 4가지 천연물 의약품 개발을 추진해오다 현재 개발을 전면 보류했다.

광동제약은 치매치료제 'KD501' 임상 2상 완료 후 현재 개발을 보류한 상태다.

지난 2014년부터 골다공증 치료제 'KDC-14-1'를 개발하던 고려제약도 7년째 개발 소식이 없다. 이 회사는 친환경생물소재연구센터 노문철 박사팀의 곰보배추를 이용한 골다공증치료제 원천기술을 이전받아 임상을 진행해왔다. 지난 2019년 주성분인 곰보배추의 예상치 못한 '간독성' 복병을 만나면서 IND(임상시험계획)가 반려돼 현재 독성물질 제거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천연물 신약으로 개발하던 항혈소판제 'KDC-17-2-1'는 당초 방침을 바꿔 합성의약품과 혼합하는 식으로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휴온스는 2015년 지방간 천연물 신약 'HL정'의 임상 2상을 마치고 2017년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었으나 아직 진척이 없다. 회사는 현재 천연물 의약품 개발보다는 천연물 건강기능식품 등으로 개발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천연물의약품 개발에 적극적이었던 조아제약도 아직 이렇다할 성과를 내놓고 못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천연물 의약품을)계속 연구 중이나 구체적으로 얘기 할만한 내용은 없다"고 했다.

상위사인 일동제약은 멀구슬나무의 열매인 천련자를 주성분으로 하는 치매치료제 'ID1201정'을 개발 중이나  2019년 8월 경증 알츠하이머병 환자 1449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3상을 승인 후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현재 대규모 환자 모집이 어려워 임상 진행이 순탄치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에스티와 녹십자웰빙이 천연물 의약품 개발에서 일부 성과를 내고 있다.

동아에스티는 현재 천연물 의약품 2개 품목을 개발 중이다. 산약 및 부채마 성분 유래 당뇨병성신경병증 치료제인 'DA-9801'는 현재 전략 재검토 이유로 미국 임상 3상이 보류 중이다. 이 치료제는 2018년에 기술 수출됐다. 또 파킨슨병 치료제인 'DA-9805'는 지난 2012년 연구를 시작해 현재는 미국 임상 2a상을 완료한 상태인데 향후 라이센스 아웃 또는 공동 연구 추진 계획 중이다.

녹십자웰빙은 암악액질 치료제인 천연물 의약품 'GCWB204'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 2017년에 임상 2상을 승인 받고 현재 독일,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에서 암악액질 환자를 대상으로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한 임상 2상을 연내 완료할 예정이다.

◇식약처 "천연물의약품 규제, 미국ㆍ유럽 수준으로 가는 상황"

천연물 의약품 개발 열기가 최근 이처럼 지지부진한 이유는 고효능의 원료 추출 어려움, 성분프로파일링 비용부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개발 규제가 과거보다 까다로워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2002년 천연물 의약품 연구개발 촉진을 위한 특례를 도입했던 식약처가 지난 2016년 재고시로 천연물신약이라는 용어를 삭제하고 제출자료 범위 완화 혜택을 없애는 등 허가 절차 강화한 탓도 있다.

건강보험 약가제도 메리트도 사라졌다. 2015년 이전에는 국민건강심사평가원이 천연물 신약이 신약에 준하는 약가혜택을 주다가 이후 규정을 변경해 일반규정에 준해 가중평균가 이하로 평가했다. 자료제출의약품에 준해 상한금액을 책정한 것이다.

임상 혜택도 없어졌다. 보건당국은 천연물 신약 개발 시 전임상과 1상을 면제해 개발 비용이 절약됐지만 이런 혜택이 없어진데다 천연물 신약에 대한 가이드라인 규제 기준도 까다로워지면서 비용과 효율 측면에서 메리트가 사라진 것이다.

제약사 관계자는 "천연물 의약품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동일한 함량에 동일한 효능을 나타내야 한다. 하지만 개발 시 원료가 자연물에서 나오다보니 특성 상 자연 환경, 기후에 따라 효과 결과치가 나오는 정도가 달라 밸런스 맞추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월등한 효능을 확보한 물질 발굴에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게다가 임상과 각종 개발혜택이 사라지니 제약사들의 천연물 개발 열기도 당연히 사라지게 됐다"고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정해진 심사 기준을 국제기준에 맞추다보니 우리나라만 특별히 까다롭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면서 "현재 미국이나 유럽과 비슷한 수준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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