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분야에서 새로운 방향성이 모색되고 있다. 가장 큰 흐름은 ‘모달리티(Modality)의 다양화’다.

모달리티란 ‘양식’, ‘양상’의 의미로 의약품 업계에서는 치료 수단의 분류를 말한다. 예를 들면 백신이나 재생의료 등도 모달리티의 하나로 꼽힌다.

그동안 이러한 용어가 쓰이지 않았던 것은 2000년경까지는 의약품은 거의 '저분자 의약품' 일변도였기 때문이다. 저분자 의약품은 수십 개의 원자가 결합한 작은 분자로 식물이나 미생물로부터 추출하거나 화학적으로 합성하여 만든 것이다. 저분자 의약품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세포 내에 침투가 쉬워 약효 발휘도 잘된다.

1990년대에는 이 같은 저분자 의약품이 전성기를 맞아 제약사의 블록버스터 약물 대부분이 이 범주에 속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갈 무렵부터 저분자 의약품이 퇴조하고 대신에 항체를 비롯한 단백질 의약품이라는 새로운 모달리티가 출현했다. 이것은 수만 개의 원자가 모인 거대 분자로 세포 침투가 어렵다. 하지만 크기가 큰 만큼 세포 표면에 있는 단백질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 기능을 조절함으로써 약효를 나타낸다. 정확하게 인식한다는 것은 부작용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 임상시험을 통과하기 쉽다.

항체 의약품이 많이 쓰이는 곳은 암이나 류마티스 등 지금까지는 치료가 어려웠던 질환이다. 예를 들어 암세포의 분열에 필요한 단백질 작용을 멈추게 함으로써 암세포 증식을 막는 것이다. 획기적인 항암제로 화제를 뿌린 ‘옵디보’도 항체 의약품의 일종이다. 항체 의약품은 현재의 의약품 매출 상위품목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10년대 이후가 되면 핵산 의약품이나 중분자 의약품 등 새로운 모달리티가 등장했다. 이들은 저분자 의약품과 단백질 의약의 중간에 해당하는 크기로 말하자면 저분자 의약품과 항체 의약품의 장점을 추구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펩티드림(PeptiDream)社 등 독자적 기술을 가진 벤처기업이 이 분야를 견인하고 있다. 이 유형은 대량 생산이 어렵지만 이를 극복하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포 치료제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예를 들어 CAR-T 요법은 암 환자의 체내에서 꺼낸 T세포(면역세포의 일종)의 유전자를 암세포 공격력을 갖게 변경, 배양하여 체내에 재주입한다. 지금까지는 의약품 범주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지 않는 치료법이지만 이제는 ‘신약’으로 승인을 받는 시대가 됐다.

mRNA 백신의 성공으로 기세를 보이고 있는 RNA 치료제도 유력한 신규 모달리티다.

이는 단백질 설계도가 되는 mRNA를 체내에 보내는 것으로 필요한 기능을 가진 단백질을 생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응용 범위가 넓다. 예를 들어 아스트라제네카에서는 심장 허혈질환 등으로 데미지를 입은 조직에 대해 혈관신생 작용을 하는 단백질을 생산시킴으로써 혈관을 회복시키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게놈 편집 등에 의해 세포 내 DNA를 수정하는 것은 나중에 부작용 우려가 있지만 mRNA는 일시적으로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없고 기본적으로 안전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디지털 헬스케어로 불리는 모달리티도 있다. 스마트폰 앱과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해 질병 치료 및 예방을 한다. 예를 들어 페어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의 약물중독 치료용 앱인 ‘리셋’(reset)은 환자에게 행동인지 치료법을 가르치거나 복약 시간을 알리는 기능이 있다. 임상에서 효능을 입증하고 이 분야에서 처음으로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속속 등장하는 새로운 의약품 모달리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약값이다. 항체 의약품에 의한 항암제 등은 약가가 한 사람 당 연간 수천만원에 달하기도 하고 CAR-T 치료제는 1회 약값이 3억원을 넘기도 한다. 또 노바티스의 유전자 치료제 졸겐스마는 미국에서 212만5000 달러라는 엄청난 약가를 받는다.

인체와 관련된 기술에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치료도 있다.

2016년에 바둑 경기에서 인공 지능 ‘알파고’(AlphaGo)가 나타나고 이후 AI가 인간의 직업을 빼앗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이 이루어져 왔다. AI의 공포에 두려워하는 것은 일반 시민뿐 아니라 일론 머스크 같은 실리콘 밸리 리더조차도 위기감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인간의 뇌를 직접 기계에 접속해 ‘버전 업’하려는 아이디어다. 학습과 수련을 거듭해 새로운 기능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뇌에 직접 다운로드한다는 발상이다. 황당한 것 같지만 이러한 브레인 머신 인터페이스(BMI) 연구는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수술로 전극을 직접 뇌에 심는 과격한 방법부터 헬멧 같은 기구를 사용하여 외부에서 뇌파를 읽는 비교적 온건한 수법까지 다양하다.

뇌에 전극을 심는 방법은 생각보다 오래되어 뇌 과학자 로버트 히스(Robert Heath)는 1950년대에 뇌에 전극을 심어 각종 정신병 환자의 치료를 시도했다. 그의 연구는 너무 급진적이고 반윤리적이었다. 뇌에 전류를 흘려 성적 자극을 주어 동성애자를 이성애자에게 치료하는 실험을 1972년에 시행하기도 했다. 그의 존재는 의학계에서 잊혀졌지만 그와 추종자들은 많은 실험을 거듭해 전류자극에 의해 음악적 취향이나 폭력성 등을 바꾸거나 인지 기능과 기억력 향상 증거를 찾아냈다. 우리가 변치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인격이나 능력도 사실 단순한 전기 자극에 의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히스의 후계자들은 메타 플랫폼스(Meta Platforms) 등 실리콘 밸리의 선도적 기업을 이끌고 있다. 이미 뇌에 전극과 반도체 칩을 묻은 원숭이가 손 등을 사용하지 않고 생각만으로 비디오 게임을 할 수 있다. 또 목 아래가 마비된 환자가 생각하는 것만으로 문자를 PC에 입력하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 성공의 배경에는 최근 급속히 발전한 기계 학습 기술이 있다. 뇌 속 전기신호 패턴과 뇌가 하고자 하는 행위의 연관을 반복적으로 학습함으로써 읽기의 정밀도를 높이고 있다. 이런 수법을 발전시켜 뇌로 생각한 것만으로 의수를 움직여 음료를 마시는 것도 실현했다.

하지만 이처럼 뇌에 기계를 묻는 수법은 감염증 등의 위험이 크고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많다.

헬멧 같은 기기로 외부에서 뇌파를 읽으면 좋지만 크게 정밀도가 떨어진다. 또 가장 가치가 높은 프라이버시인 뇌 속 정보를 타인에게 읽히는 위험과 저항감은 큰 과제다. 외부에서 자신의 뇌를 해킹 당할 위험은 없는지 기기 고장이 날 경우 어떻게 할지, 군사적으로 요용될 가능성은 없는지 등 우려 사항도 너무 많아 아직은 보완해야 할 사항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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