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제약에 근무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마 1980년대 후반 어느 해로 기억된다. 10월에 광고 예산이 추가로 내려왔다. 10, 11, 12월 3개월간 약 10억원의 추가예산을 집행하라는 것이었다. 10억원 예산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보통 연말이면 결산에 대비해 예산을 줄이기 마련인데, 대웅제약은 오히려 예산을 늘린 것이다. 연말에 예상을 뛰어넘는 흑자가 예상되자 광고 집행액을 늘린 것인데, 어차피 세금으로 낼 바에야 광고를 더 내보내자는 심산이었으리라.

대웅제약 윤영환 명예회장의 광고사랑은 유별났다. 약업계의 경기가 전반적으로 어려워 다들 광고예산을 줄일 때에도 대웅제약은 오히려 예산을 늘렸다. "경기가 어려우니 광고비를 좀 줄이면 어떻겠느냐"는 재경 담당 임원의 건의에도 윤 회장은 “죽어가는 환자의 팔에 꽂혀있는 링겔 주사기를 빼버리면 그 환자는 어떻게 되느냐”고 반문하면서 일축했다는 일화는 업계에서 유명하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소위 ‘광고 비수기’가 돌아온다. 여름 휴가철과 맞물려 7~8월은 신문사마다 비상이 걸린다. 휴가 기간 동안 쓸 광고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신문사 광고영업사원들은 동분서주한다. 이때 대웅제약에서는 소위 ‘월정광고’로 광고효율을 올리는 방안을 자주 활용했다. 매체에 월 일정 금액 이상의 광고 예산을 확보해 주는 대신 정상금액의 반도 안되는 싼 가격에 광고를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묘안'이다.

대웅제약은 매체의 광고 담당자들과의 유대 강화를 통해 서비스 광고를 유도하기도 했다. 방송, 신문, 전문지 등 각 매체의 제약업계 출입 광고 담당자들을 동해안으로 1박 2일 또는 2박 3일 초청해 회사가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광고 세미나를 개최해 친목을 도모했다.

70년대 후반에 시작된 ‘대웅제약 초청 광고 세미나’는 90년대 후반까지 약 20여 년간 계속됐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매체광고 담당자들은 후에 별도의 모임을 만들고 이름을 ‘연웅회(連熊會)라고 불렀다. 첫 세미나 장소인 강릉시 연곡면의 ‘연(連)’과 대웅제약의 ‘웅(熊)’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었다.

‘연웅회’ 회원들은 ‘이왕이면 대웅제약’이란 의식이 그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대웅제약의 '우군'들이었다. 이 때문인지 여름철 광고 비수기에 각 매체 신문광고 지면이 비면 대부분 대웅제약 서비스 광고로 메워졌다. 대웅제약의 간판 품목인 우루사가 유명해진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서비스 광고에 얽힌 에피소드 한 가지. 어느 해인가 여름 휴가철이 끝난 시기인 9월 초 상사인 이모 부장이 윤 회장에게 불려갔다.

윤 회장은 이 부장에게 대뜸 "자네 우리 광고로 신문을 도배할 작정인가?“라고 질책했다. 8월 조선일보가 발행되지 않는 일요일을 빼고는 지면에 매일 대웅제약의 5단통 광고가 들어가자 윤 회장이 그 이유를 캐물은 것이다.

이 부장의 자세한 설명을 들은 윤 회장의 표정은 이내 밝아졌다. 정상 단가로 따지면 4~5회 정도의 가격에 25회나 광고가 나왔으니 '가성비'가 이처럼 높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윤 회장의 광고사랑은 '지극'했다. 광고 문안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썼을 뿐 아니라 필자가 대웅제약을 퇴사하던 해인 1992년 말 대웅제약의 총광고비가 110억원을 넘었으니, 실로 엄청난 돈을 광고에 쏟아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이었다.

광고는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크리에이티브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광고량이다.

아무리 크리에이티브가 뛰어난 광고물이라 할지라도 매체에 노출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를 지낸 리대룡 교수는 학창시절 광고매체론 과목 수업 시간에 “아무리 매체 전략이 뛰어나도 퍼붓는 놈한테는 못당한다”며 광고물량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기억이 새롭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제 12대 이사장을 지내고 홍보위원장도 오래 맡은 명인제약의 이행명 회장은 수년 전 협회 광고심의위원 대상 세미나에서 “광고를 조금 할 바에야 아예 안하는 게 낫다”고 설파했다. 찔금찔끔하는 광고의 비효율성을 꼬집는 말이었다.

실제로 이가탄, 메이킨 등을 유명한 일반약으로 키운 명인제약은 매년 매출액의 17~18% 가량을 광고선전비에 쏟아붓고 있다. 이에 힘입어 변비약 메이킨의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100% 이상 증가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동아제약, 종근당, 대웅제약, 일동제약, 보령제약, 광동제약, 동화약품, 한일약품, 일양약품 등의 제약 총수들은 거의가 다 광고 애착이 강했고, 실제로 많은 양의 광고를 집행하기도 했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제약회사들이 광고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광고비를 비용으로 보느냐, 투자로 보느냐의 판단은 경영자의 몫인데, 창업자는 주로 투자로 보는 반면, 오너 2세는 비용으로 보는 경향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해외 유학파가 주류인 오너 2세나 3세들은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광고비의 효율성을 꼼꼼히 따져 광고를 집행하기 시작했다. 소위 ‘안면광고’도 사라졌다. 이로 인해 대체적으로 광고비도 예전보다 줄어들었는데, 연구개발(R&D) 비용이 늘어난 것도 한 원인이 됐을 것이다.

한 때 전 산업계의 광고시장을 선도했던 제약광고가 이제는 순위가 한참 밀려 2017년 방송광고비 기준으로 금융, 정보통신, 서비스, 식품, 음료에 이어 6번째로 내려앉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광고를 많이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우루사, 박카스, 아로나민, 활명수, 훼스탈, 우황청심원, 용각산 등은 우리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국가 대표급 일반약들이다.

이는 대중광고의 힘, 그 뒤에 창업자 어르신들의 지독스런 광고 사랑이 만들어낸 '걸작'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올리브애드 대표>

◇필자 약력

중앙대학교 광고홍보학과 및 동 대학 신문방송대학원 졸업

대웅제약 광고과장

한미약품 홍보이사

광동제약 홍보상무 및 마케팅 본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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