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약품ㆍ건강관리 규제기구(MHRA)는 혈액 질환인 겸상 적혈구 및 베타 지중해 빈혈을 치료하기 위해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편집을 사용하는 새로운 종류의 의약품을 세계 최초로 승인했다.

이번 승인은 연구자들이 박테리아에서 차용한 바이러스 방어 메커니즘인 크리스퍼를 유전자 가위로 만들어 DNA를 정밀하게 변형할 수 있는 방법을 처음 제안한 지 10년 만에 이뤄낸 과학적 이정표다.

‘카스거비’(Casgevy)라고 불리는 이 신약은 버텍스 파마슈티컬스와 크리스퍼 테라퓨틱스가 개발했다. 12세 이상의 겸상 적혈구 및 이 질환으로 인한 재발성 통증 위기 또는 정기적 수혈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베타 지중해 빈혈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승인됐다. 이 승인은 일치하는 기증자로부터 줄기세포 이식을 받을 수 없는 개인으로 제한된다.

버텍스와 크리스퍼는 영국에서 약 2000명의 환자가 카스거비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는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를 채취, 실험실에서 크리스퍼로 편집한 후 재수혈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유전자 편집을 통해 재수혈된 세포는 겸상 적혈구 및 베타 지중해 빈혈에서 손상된 필수 산소 운반 단백질인 헤모글로빈의 기능적 형태를 생산할 수 있다.

임상시험에 따르면 이 치료법은 겸상 적혈구 환자의 통증 위기를 없애고 베타 지중해빈혈 환자가 생존을 위해 만성 수혈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크리스퍼는 줄기세포의 DNA를 편집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카스거비가 제공하는 혜택은 평생 지속될 수 있다.

크리스퍼 테라퓨틱스 사마르 쿨카니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이 기술이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첫 번째 사례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의약품으로 전환하기 위해 설립된 최초의 회사 중 하나인 크리스퍼 테라퓨틱스는 2015년에 버텍스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후 두 회사는 협업을 확대해 카스게비의 글로벌 개발 및 마케팅을 주도할 수 있는 라이선스 권한을 버텍스에 부여했다. 버텍스는 크리스퍼와 카스게비의 모든 비용 및 수익을 60 대 40으로 나눈다.

두 회사는 수 백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카스거비의 가격을 발표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별도의 정부 기관이 신약에 대한 환급을 협상한다.

비용만이 치료의 유일한 장애물은 아닐 수 있다. 카스게비는 편집된 줄기세포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골수에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환자에게 ‘전처치’(preconditioning) 화학요법을 시행해야 한다. 이 요법은 고통스러운 구강 염증과 불임 위험을 포함한 다양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버텍스는 임상시험 참가자의 생식력 보존을 보장했지만 이 치료법이 상업적 환경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줄기세포를 채취하고 카스거비를 준비하고 전처치 요법을 투여하는 전체 과정은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치료 후 환자는 안전 모니터링을 위해 병원에서 몇 주를 보내야 할 수도 있다고 MHRA은 말했다.

카스거비는 12월 8일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며 유럽 연합에서도 검토 중이다. 버텍스는 미국과 유럽에서 카스거지를 투여받을 수 있는 환자가 3만2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리링크 파트너스(Leerink Partners)의 애널리스트 마니 포루하르는 투자자 노트에서 “이번 승인은 유전자 편집 기술이 본격적으로 상업적 영역에 진입하는 역사적인 이정표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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