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으로부터 분가해 서울 한남동에 따로 살고 있는 은행원 김모(45ㆍ남성) 씨는 최근 가슴이 답답하다는 부친의 말을 듣고 동네의원의 권유에 따라 부친을 모시고 서울 동작구에 있는 대형병원인 A병원에 갔다.

검사결과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좀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자는 부친의 말에 일단 퇴원하기로 결정하고, 진료비 청구서를 받아들고는 깜짝 놀랐다.

보험이 적용되는 급여항목에서 본인부담금은 10만원정도가 나온데 반해 비급여항목 중 선택진료료에 30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라고 돼 있던 것. 김 씨는 시간도 늦었고 부친이 힘들어 해서 이내 진료비를 계산했지만 어딘가 개운치 않았다. 특별히 선택진료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적도 없고 검사만 했을 뿐인데 진료비를 바가지 쓴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날 김 씨는 상담을 위해 한국소비자원에 전화를 걸었더니 지난해 일부 대형병원들이 선택진료비를 부당 징수해 이들 병원을 대상으로 집단분쟁조정에 들어간 사실을 확인하고, 그 외의 병원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문의해보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에 심평원에 문의한 후 ‘진료비확인요청’(비급여 항목이 정당한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절차)을 접수한 후 김 씨는 허탈했다. 매달 꼬박 보험료만 10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고 있는데, 그렇게 많은 보험료를 왜 부담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김 씨의 경우처럼 환자가 의사를 선택하는 대형병원의 선택진료제도가 사실상 환자에게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대형병원의 부당한 선택진료비로 피해구제신청을 접수한 소비자가 60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05년부터 2008년 6월까지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등 유명 대형병원 8곳이 선택진료비를 부당하게 징수해온 사실을 적발함에 따라 집단분쟁조정을 위해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의 사례를 접수한 결과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3년 6개월 간 환자들로부터 3000억원이 넘는 선택진료비(특진비)를 부당하게 받은 것으로 확인된 이들 병원에 대해 지난해 시정명령과 함께 총 30억4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상태다. 현재 집단분쟁조정을 위한 소비자원 조정위원회의 심사가 진행 중으로, 빠르면 이달 말 적어도 내달 초까지 결정이 나는 대로 병원의 환불조치 등의 후속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병원의 선택진료비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병원으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한 경우 △설명을 듣지 않은 경우 △선택진료비용이 너무 비싸게 나온 경우 등이 대부분이다.

한국소비자원 의료팀 박재구 팀장은 “소비자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특진이라든지 선택진료료라는 명목으로 진료비가 청구되다보니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소비자 스스로 사전에 진료비내역을 면밀히 챙기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공정위의 이 같은 적발사례에도 불구하고 대형병원들의 선택진료비에 관한 소비자 피해사례가 줄지 않자 정부도 이에 대한 근본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선택진료 신청서식 변경과 병원이 신청서사본을 반드시 환자에게 제공하는 내용, 선택진료의사 자격요건 강화 등의 개선책을 마련해 진행 중으로 5월께 관련법에 관한 입법예고를 할 계획이다. 특히 비용과 관련해 건강보험에서 흡수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를 검토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에 정책연구용역을 의뢰한 상태로 연구결과에 따라 추후 정책 반영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 오창현 사무관은 “선택진료의 특성상 환자본인이 좀 더 고급진료를 받고자하는 의미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으려면 환자가 어느 정도의 비용은 지불해야 하는 것에 일정부분 이해도 필요한 것 같다”면서 “환자가 선택진료 신청서식을 쓸 때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고 특히 진료지원과목이라 해서 반드시 선택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 두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오는 5월부터 비급여고지가 의무화됨에 따라  이를 지키지 않은 병의원이 적발될 경우 시정명령과 함께 벌금 300만원의 과태료 부과 및 영업정지 13일의 행정처분이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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