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전 부인의 건강보험증을 도용해 동거녀(주민등록 말소자)의 유방암 치료를 위해 8년간 523회에 걸쳐 5077만원 상당의 진료를 받게한 사람. 이민으로 출국했다가 외국인 신분으로 귀국해 심장수술을 하기 위해 동생의 건보증을 빌려 2138만원 어치의 진료를 받게 한 사람 등등.

이들은 모두 국내에서 건보료를 한푼도 내지 않고 자신의 질환 치료를 위해 친인척이나 아는 사람의 건보증을 빌리거나 훔쳐 사용한 사람들이다.

지난 2008년부터 올 5월까지 이같은 부정 보험진료자 4215명이 당국에 적발됐다고 한다.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같은 부정 건보증 사용자 적발 건수는 지난 2008년 1만668건에서 지난해 3만1494건으로 5년 동안 무려 2.95배나 증가했다.

지난 2008년부터 올 5월까지 적발 건수는 모두 13만6999건으로 다른 사람의 건보증을 빌리거나 도용한 사람의 1인당 사용횟수는 무려 32.5건이나 됐다. 건보증을 한 번 부정으로 이용한 사람이 되풀이해 상습적으로 이용했다는 이야기다. 특히 치료금액이 비쌀수록 건보증 대여 및 도용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진료비 1000만원 이상의 부정사용자 40명의 경우 친인척의 건보증 대여·도용률이 68%나 됐다.

건보공단 측은 이에 대해 미국 등으로 이민한 교포들이 중질환에 걸렸을 경우 치료비가 비싼 해당 외국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진료비가 저렴한 한국으로 돌아와 친인척의 건보증을 빌려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건보증 대여는 친인척 간에 은밀히 이뤄지기 때문에 쉽게 적발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운좋게(?) 적발되지 않은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건보증 부정 사용은 곧바로 건보가입자들의 건보료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이제 이러한 얌체 건보수혜자의 뿌리를 뽑을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한 보험 관련 전문 회계법인은 수년전 부정 건보진료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현재의 종이 건강보험증 대신 전자 건보증 사용을 제안한 적이 있다. 전자카드식 건보증을 사용할 경우 전자서명을 통해 건보가입자 본인 여부를 현장에서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 법인의 주장이다.

카드단말기를 통해 전자서명이 공단에 구축된 전자서명 DB로 전송되고 여기에서 대조작업을 통해 즉시 확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건보증의 대여·도용 방지는 물론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한 의료기관의 진료비 허위부당청구를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환자가 본인부담금 결제 시 의료기관이 본인부담금 내역을 공단에 전송하면 승인번호를 받은 후 결제를 진행하기 때문에 본인부담금 부풀리기도 사전 차단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러한 전자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수백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종이 건보증이나 주민등록번호만 제시하고 건보 진료를 받는 체제에서는 부정 건보진료행위를 막을 수 없다.

또 이에 따른 건보재정의 손실을 생각하면 오히려 전자 건보증 시스템 구축이 장기적으로는 더욱 효율적이라고 본다. 보건당국은 늦었지만 이제라도 전자 건보증 도입을 본격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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