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네의원 의사A씨에게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웃 약사 B씨가 찾아왔다. B씨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대체조제(의사처방과 다른 약을 조제하는 행위)했다는 사실을 자신이 A씨에게 사전에 통보했다는 것을 확인하는 서류에 도장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알았다’고 말한뒤 잠시후 B씨의 약국을 찾아갔다. 그곳에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이 B씨의 약국에 대해 청구불일치를 조사중이었다. A씨를 만난 심평원 직원은 ‘의사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으니 B씨에게 대체조제토록 했다는 사실을 확인해줘도 괜찮다’고 권했다.”

이같은 내용은 최근 노환규 의협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약사의 청구불일치 행위를 조사하러 나온 심평원 직원이 약사의 부정행위를 봐주라고 의사에게 요구하더라는 것이다. 약을 처방한 의사가 약사의 대체조제에 동의했음을 확인해주면 약사의 처벌이 면해지기 때문이다. 노 회장의 회견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를 가볍게 봐서는 안될 일이다.

약국의 청구불일치는 약국이 공급받은 의약품수량과 건보공단에 보험료를 청구한 수량과의 차이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말하자면 의사가 처방한 값비싼 약과 성분이 비슷하거나 같은 값싼 다른 약을 조제해주고 건보공단에는 의사처방대로 값이 비싼약을 조제해줬다고 약값을 청구, 그 차액을 착복하는 불법행위다. 적발될 경우 차액환수와 함께 15일간의 자격정지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이를 단속해야할 심평원 직원이 단속할 생각은 안하고 약사의 대체조제에 동의했음을 확인해주라고 의사에게 요구했다고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긴 격이다. 당국은 즉시 심평원에 대한 조사를 실시, 해당직원에 대한 적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약의 조제를 지금처럼 규정에 따라 약품의 ‘상표명 처방’대로 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약사들의 주장대로 ‘성분명 처방제’로 바꾸는 것이 좋은지를 따지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약사가 의사처방과 다르게 약을 조제할 경우 환자는 이를 알 길이 없다. 심평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9년 2분기부터 2011년 2분기까지 이처럼 의사처방과 다르게 약을 조제한 약국이 전국개업약국 2만여곳중 무려 81.5%인 1만6300여곳에 달했다. 거의 모든 약국들이 소비자와 의사들을 속여 왔다는 이야기다. 현행 상품명 처방의 규정이 잘못됐다면 이를 바꾸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렇지 않고 심평원의 조사직원들이 현행규정을 어긴 약사들의 불법을 덮어주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는 심평원이 약국과 약사단체로부터 부정한 로비를 받았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는 일이다.

청구불일치는 약사들에게만 있는 일은 아니다. 의사들도 값싼 주사제 또는 치료제를 사용하고서도 건보공단에 비싼 재료값을 청구하는 일은 허다하다. 매년 진료비를 허위·부당청구하다 적발되는 병의원이 끊이지 않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러한 청구불일치 행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금으로서는 지속적으로 병·의원과 약국에 대해 조사를 실시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 외에 방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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