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촌동 지하방에 살던 60대 어머니가 ‘주인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를 남기고 두 딸과 함께 세상을 등졌습니다. 직장이 없는 세 모녀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였고 성·연령 및 전·월세를 기준으로 산정된 보험료를 매달 5만140원을 납부해야 했습니다. 반면 수 천만원의 연금 소득과 5억원 넘는 재산을 가진 전직 건보공단 이사장인 저는 직장가입자인 아내의 피부양자로 등재돼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오는 14일 임기를 마치고 퇴임을 앞둔 김종대 건보공단 이사장이 지난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의 모순을 아주 짧게 정곡을 찔러 설명한 것이다. 소득도 없는 송파 세 모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건보료를 내는데 비해 소득이 있는 자신은 건보료를 내지 않는 것은 자신이 꼼수를 부려서가 아니라 국가가 만든 잘못된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 때문이라는 지적한 것이다.

김 이사장은 그러면서 “혹시라도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해도 보험료를 전혀 내지 않아도 되는 피부양자 등재를 포기하지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고 솔직한 마음을 고백했다.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는 직장가입자의 경우 월 급여 중심으로, 지역가입자는 재산 중심으로 부과토록 건강보험법상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소득이 없는 은퇴 노인이나 소득이 불안정한 일용직 근로자 및 영세 자영업자들은 주택이나 자동차가 있다는 이유로 건보료 폭탄을 맞게 돼있다.

반면 직장가입자는 재산이 많아도 급여 기준으로 건보료를 내도록 돼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보험료를 낼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도 부양 가족이 있으면 건보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생활이 어려운데도 직계부양가족이 없으면 건보료를 내야 하는 것도 현 건보료 부과체계의 모순이다.

현재 6개월 이상 건보료 체납자는 158만 가구에 이른다. 이 가운데 66.4%인 105만 가구가 먹고 살기조차 힘들어 건보료를 내지 못하는 가구라고 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 건보공단에 접수된 민원 중 80%(5700만건)가 건보료 부과 문제였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모두 국가가 처음부터 건보료 부과체계를 불공평하게 잘못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다.

건보공단은 이를 시정하기 위해 2011년 11월 건보쇄신위원회를 구성하고 ‘소득 중심의 건보료 부과체계 단일화방안’을 마련해 보건복지부 등 정부에 건의했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지난해 8월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까지 발족시켰다. 올해 안에 건보료 부과체계를 소득중심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확정안 마련조차 3차례나 미뤄졌다. 시뮬레이션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지역가입자들의 63%에 이르는 자영업자의 소득 파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했다. 이런 저런 핑계로 건보료 부과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바꾸는 작업이 흐지부지되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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