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로 인한 피해자 또는 유족이 의료분쟁중재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하면 해당 의료기관이나 의사가 조정절차에 반드시 참여토록 강제하는 것을 규정한 ‘의료분쟁조정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지난 주말 국회 법안소위에서 심의가 보류됐다. 이로써 이 법의 개정안은 빨라야 다음 임시국회에서나 심의가 가능할 전망이다.

그동안 이 법안의 개정안에 대해 끈질기게 반대운동을 펴온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들은 당분간 한숨을 내려 놓게 됐다. 반면 녹색소비자운동등 법안 통과를 기다려온 사회단체들은 국회가 임시국회를 여는대로 이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의료분쟁조정법은 피해 당사자나 유족이 조정신청을 해도 의료기관이나 의사 등 피신청인이 14일 이내에 동의하지 않으면 조정절차가 자동 각하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경우 피해자는 어쩔 수 없이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이 때문에 많은 피해자들은 소송을 포기해 의료사고의 원인조차 알지 못하고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법 개정안은 이러한 현행 법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의협은 환자 측의 분쟁조정 신청이 남발돼 의사들의 권리가 무분별하게 침해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이 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끈질기게 반대해왔다. 특히 의료사고가 상대적으로 많은 외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등 전문수술 영역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우수인력을 확보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의협의 주장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 현행 의료분쟁 조정제도에서도 지난 2012년 조정 신청 건수가 500여건에 불과했던 것이 올들어 9개월동안만 1400여건으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만일 조정 신청에 의사 등 피신청인의 참여를 강제하면 가벼운 의료사고에도 “우선 조정신청이나 하고 보자”는 식의 묻지마 조정신청이 봇물을 이룰 것이 예상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환자들의 알 권리가 외면당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전문 의료지식을 갖고 있는 의사들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환자 측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특히 법 개정안은 피신청인(의사)이 조정절차 개시에 대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법 개정안은 환자 측이 떼쓰기 식으로 부당하게 조정 신청을 남발할 경우 분쟁중재위원회가 조정 완료를 선언토록 하는 등 폐해 방지장치까지 두고 있다.

의료분쟁중재위원회의 조정은 정식법원의 최종 판결과 같은 효과를 갖는다. 따라서 정식 재판보다 훨씬 신속하게 판결을 받을수 있고 소송비용도 아낄 수 있는 등 장점도 있다. 따라서 의협이 분쟁조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 법원의 정식 소송까지 간다면 의료분쟁의 해결은 더욱 어렵고 복잡해질 것이 뻔하다.

의료인들이 지금 저수가와 리베이트 쌍벌제, 투아웃제 등으로 최악의 진료환경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정 신청 남발방지 장치가 잘 갖춰진다면 새로운 분쟁조정 제도를 굳이 반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는 의사에 대한 신뢰성 강화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저작권자 © 메디소비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