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소득 중심으로 개편하려던 정부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

지난주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이 “개편으로 인해 보험료 부담이 늘어나는 계층의 불만이 클 것으로 보여 일단 개편작업을 뒤로 미룬다”고 했으나 이를 연기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청와대까지 나서 “시간을 갖고 신중히 검토키로 했다”고 하는데도 국민들은 정부가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들의 연말정산 쇼크 및 주민세, 자동차세 인상계획 발표로 월급쟁이들의 불만이 폭발하자 3년동안 준비 끝에 마련한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 발표 및 시행을 취소한 것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격이다.

현행 건보료 부과는 직장가입자에게는 월급여 기준으로, 지역가입자는 소유주택과 자동차 등 재산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월급여 외에 부동산임대 배당 이자 등 별도의 고액소득이 있는 직장인은 적은 보험료를 냈다. 반면 소득이 없어도 자가주택이나 자동차가 있는 사람은 직장인에 비해 2~3배나 많은 보험료를 내야만 했다. 퇴직자나 실직자들이 그랬다.

이번 건보료 체계 개편은 이러한 부과기준을 직장인, 지역가입자 모두에게 모든 연간소득으로 일원화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보험료 부과의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정의 실현에도 부합되는 일이다. 지금은 연간 소득이 수천만원이 넘어도 직장에 다니는 자녀가 있으면 피부양자가 돼 건보료를 내지 않는다. 또 송파구 세 모녀처럼 수입이 없는데도 직장에 다니는 가족이 없으면 월세집에 살아도 수만원씩의 보험금을 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의 개선은 시급한 과제였다. 부과기준을 개선함으로써 건보료를 더 부담하는 계층은 직장가입자 가운데 월급 외 연간 종합소득 2000만원이 넘는 사람 26만3000가구(2011년 기준), 그동안 건보료를 한푼도 내지 않던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가운데 연간 2000만원 이상의 소득이 있는 19만3000가구다. 보험료를 그전 보다 더 많이 부담하는 사람이 모두 45만6000명인 것이다. 이에 비해 보험료를 소득중심으로 개선함으로써 보험료가 줄어드는 사람은 지역가입자 759만명 가운데 79.3%인 602만명이나 된다.

그런데 정부 여당이 직장인들의 반대가 두렵다고 해서 13배나 많은 지역가입자에 대한 혜택을 거부한 것이다. 이러니 여권이 부자들 만을 위한 정당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45만여명의 직장인 표만을 의식하다가 600만명 이상 지역가입자들의 표를 잃는 소탐대실의 정치행위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해부터 올해가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3년차이자 선거가 없는 해여서 경제와 각종 개혁을 위한 골든타임임을 강조해 왔다. 2016년 총선거, 2017년에는 대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에는 여야 정당이 사실상 총선 준비에 들어가기 때문에 개혁의 골든타임은 올해 상반기 밖에 없다. 하반기 들어서면 개혁은 물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이 반드시 상반기 중 이뤄져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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