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제약협회가 올해 이사장단이 새로 바뀌면서 회심의 카드로 내건 ‘공약’이 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제약계의 불법 영업 관행인 리베이트를 뿌리뽑기위해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리베이트 무기명 설문조사를 실시해 그 유형을 공개하겠다는 정책 때문이다.

협회는 5월 말 제4차 이사회에서 무기명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자리에서 개표해 다수 회원사들로부터 불공정거래 의심기업으로 지목된 제약사 2~3개사를 참석자들에게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관련 제약사들은 공개하지 않고 리베이트 유형만 공개한다지만, 어찌보면 위험천만한 ‘발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업계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다.

협회가 어떻게든 고질적인 리베이트 영업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결연한 자정 노력의 취지엔 공감하나,문제는 실효성과 부작용이다.

일각에선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리베이트 설문조사가 자칫 경쟁사들의 '마녀사냥식 음해'로 변질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일부 회원사들이 ‘카더라’만 가지고 근거없이 잘 나가는 제약사를 '리베이트 혐의' 제약사로 지목한다면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리베이트 혐의로 지목된 제약사들의 명단을 비밀로 한다지만, 명단 보안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갈 공산이 크다. 그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미 정부 차원에서 리베이트 투아웃제, 리베이트 쌍벌제 등으로 불법 리베이트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협회의 무기명 설문조사는 선언적 의미에 그칠 공산이 크다. 불법 리베이트 근거가 확실하다면 당국에 제보하면 된다.

한때 불법 리베이트가 기승을 부린 일본도 회원사 간 자정노력이 있었지만, 실효성을 거둔 건 강력한 리베이트 규제 정책 때문이었다.

1980년대 불법 리베이트로 제약사들이 우후죽순 늘어나 한때 1800여개에 달했다가 1990년대 정부 차원의 강력한 불법 리베이트 근절책이 시행되면서 300여개로 급감했다.

불법 리베이트로 적발된 제약사들은 국세청의 세무조사로 거액의 추징금이 물렸고, 문을 닫는 영세제약사들이 속출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수년 전부터 의약계에 강력한 불법 리베이트 근절 바람이 몰아치면서 검찰ㆍ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이은 국세청 세무조사로 이어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협회의 설문조사 공개에 “규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방식의 리베이트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어떤 제약사는 리베이트에 유능한 직원을 스카우트했다는 말도 있다”며 "자칫 회원사들 간 불신만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불법 리베이트 근절은 의료계를 제외한채 제약계만 나선다고 해서 그 실효성을 거둘 수가 없다. 일본 당국은 제약계는 물론,의료계에도 리베이트 칼날을 들이대 끝내 리베이트의 뿌리를 뽑았다.

이런 근원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제약계의 힘만으로는 불법 리베이트 근절은 요원하다.

더 중요한 것은 제약사들이 일본처럼 불법 리베이트를 하다 적발되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선의로 추진되는 협회의 리베이트 설문조사가 회원사들 간 불화와 불신의 불씨가 돼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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