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신이 마비된 사람이 뇌와 척추에 심겨진 장치 덕분에 걸을 수 있게 돼 공상과학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현실이 됐다고 미국의 유에스에이투데이지가 보도했다.

스위스 로잔대학 연구팀은 지금까지 버튼을 눌러 장치를 가동시켜야만 걷는 게 가능했던 네덜란드 남성 게르트 얀 오스캄 씨가 이식 받은 새로운 장치 덕분에 걷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걷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네이처지에 발표됐다.

연구팀의 그레고아르 쿠르틴 박사는 “새 장치는 다리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뇌와 척추 사이의 통신을 무선 디지털 방식으로 연결해 자연스런 보행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공동연구자로 참여한 신경외과 의사 조셀린 블로흐 박사는 “처음에는 꽤 공상과학 소설처럼 보였으나 오늘날 사실이 됐다”고 했다.

장치를 이식 받은 오스캄(40) 씨는 척추가 완전히 절단되지 않은 상태여서 잠시 연습한 후 장치를 끄고나서도 목발로 몇 걸음 걸을 수 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100m에서 200m까지도 걷는다.

오스캄 씨는 “12년 동안 다시 일어서려고 노력해왔다”며 “지난 주 집에 있었을 때에는 페인트칠도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오스캄 씨는 척수에 심겨진 하나의 장치에 의해 제어돼 왔으나 앞으로는 뇌와 척추 두 군데에 자극 장치가 심어짐에 따라 스스로의 생각으로 제어할 수 있게 됐다. 그가 이식 장치의 효과가 발표된 유일한 사람이지만 연구원들은 많은 척추부상과 뇌졸중 환자가 휠체어에서 일어나는 것을 도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반신 마비 환자는 서 있는 동안 방광, 혈압, 땀 기능을 개선시킬 수 있다.

로잔대학 연구원들은 1980년대에 이식 장치가 질병과 부상을 가진 사람들의 이동성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난 십여 년 동안은 장치를 정교하게 이식하기 위해 뇌와 근육 사이의 전기신호에 대해 연구해왔다.

이번 새로운 연구는 최초로 척수와 뇌 모두 자극해 부상으로 인해 중단된 전기신호 전달 신경을 재생시켰다. 이에 따라 오스캄 씨 몸이 보내는 약한 신호들이 강화돼 장치가 꺼져 있어도 움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스캄 씨는 이제 왼쪽 다리는 정상에 가까운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걸을 때 오른쪽 다리로 땅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 기분 좋은 걸음걸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걷는 거리보다는 걸음걸이의 질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혔다. 그에게 가장 편안한 거리는 20~30m인데, 이는 볼링장 정도의 길이에 해당한다.

쿠르틴 교수는 “자극이 오스캄 씨의 다리가 차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적기에 전달될 뿐 아니라 과거에는 로봇처럼 보이던 걸음걸이도 이젠 자연스러워졌다”며 “엄청난 기술이지만, 아직은 초기 단계”라고 말했다.

오스캄 씨도 장치가 하나만 있을 때엔 장치가 제공하는 리듬에 맞출 때만 걸을 수 있어 굉장한 스트레스였는데, 지금은 사라졌다고 했다. 두 번 째 이식수술 후 재활치료 첫날 아기 걸음마였지만 그는 빠르게 적응해나갔다. 이전에는 자극이 사라졌다 생겼다를 반복했으나 지금은 움직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수록 자극이 증폭된다.

연구팀은 장치를 작동케 하는 하드웨어를 배낭 같은 데 넣어 다닐 수 있도록 소형화하는 한편 1년 안에 미국에서 임상시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쿠르틴 박사는 상용화를 위해 온워드라는 회사도 설립했다.

쿠르틴의 멘토였던 레지 에드거튼 UCLA 연구원은 뇌와 하부 척추를 재연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걸음걸이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게 안되면 신체는 위치를 알지 못한 채 길을 알려주려는 휴대폰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장치가 결코 자연스런 걸음걸이를 완벽하게 재현해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기술도 3억년 동안의 진화가 만들낸 것과 경쟁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개선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메디소비자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