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의자에 앉자마자 ‘저는 통풍인데요….’ 어디가 불편해서 왔는지 묻기도 전에 이미 진단명이 나오니 외래진료시간이 단축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돌다리도 두들기라는 은사님 말씀을 되내며 다시 문진을 시작한다. ‘어디가 불편하신 거죠? 다른 병원에서 진단을 받으신 건가요?’ 중년의 여성 환자는 허리춤에서 스크랩을 해놓은 자료를 수북이 꺼내놓는다.

"신문하고 인터넷하고 TV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저하고 증상이 똑같아요."

꺼내놓은 자료는 족부의 통증과 관련된 의학정보들…. 자료를 보면서 다시 문진을 시작한다. "그래서 불편하신 데가 어디인가요?" "엄지발가락인데요…(중략)"

그런데 말씀을 들어보고 발모양을 살펴보고 아무리 봐도 증상의 발생양상이나 발가락의 형태를 봐서는 통풍보다는 족무지외반증에 가까워 보인다. "엄지발가락 주위가 아프다고 다 통풍은 아닙니다. 통풍은…."

주저리주저리 설명이 이어지고 피검사와 방사선검사를 하고나서 다시 마주 앉았다. "환자분은 통풍보다는 족무지외반증 때문에 통증이 생기는 경우로 보입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이상하다. 분명히 여기 설명된 통풍의 증상하고 똑같은데 왜 진단명이 틀린 거죠?" 순간 환자의 눈빛에 스쳐가는 의구심과 당황스러움이 오히려 정형외과 전문의를 당황하게 만든다.

정형외과 전공의를 마치고 전문의 시험을 보기 전에 필자를 가장 힘들게 했던 명제는 ‘의학에 과연 정답이 있는가’였다. 뼈가 골절될 때 피부를 뚫고 나와서 감염의 발생률이 높은 개방성 골절의 경우, 물론 1990년대 초반이기는 하였지만, 책에서는 Type을 구별하여 골막이 벗겨지거나 혈관계의 손상이 심하고 오염이 심한 3형의 경우에는 내고정물을 최소화하고 외고정이나 기브스 등으로 감염관리 후에 고정을 시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치료지침이었다.

그런데 학회에 나가보니 3형의 경우에도 견고한 내고정을 시행하는 경우에 오히려 감염의 발생률이 적다는 치험(治驗)이 유명한 병원에서 발표되고 있으니 전공의 상태에서는 오히려 혼란이 가중되기만 하였다. 새로운 치료방법이 논문으로 발표되고 학회에서 제안되더라도 다른 의사에 의해 시행되고 검증되어 교과서 정도의 출판에 이르게 되기에는 적어도 5년에서 10년 정도가 걸린다는 것은 그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IT 강국인 우리나라의 경우 여러 매체를 통해 일반인들이 의학적 정보를 쉽게 접하고, 본인의 증상을 판단하여 진단과 치료의 방법까지 유추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왜 의학공부를 6년이나 혹은 전문대학원인 경우 대학을 졸업하고도 4년을 거치고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서야 전문의가 되는 것인지를 한 번 생각해 봄직하지 않을까?

증상은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 체험이며 주증상인 통증인 경우에도 연령 등 환자적 요인과 속한 환경 및 사회적 요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심하고, 객관적 검사인 피검사, 방사선검사 등의 진단적 결과도 검사 당시의 상태 등을 포함한 여러 요인에 의해 그 해석과 판단이 중요하다. 간혹 증상에서 진단에 이르는 경과를 나무에 비교하기도 한다.

통증이라는 증상을 따라서 감별을 통해 여러 가지를 따라 올라가고 또 올라가다보면 나뭇잎에 이르는 진단적 과정에서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큰 나무를 만나기도 한다. 전문의를 취득한지 어언 20년이지만 아직도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기가 어렵다면 자질이 부족함인가 아니면 지나친 겸손일까? 오늘도 비슷한 증상으로 방문했던 환자들을 감별하기 위해 책을 뒤적인다. <국립경찰병원 정형외과 의사>

※ 족무지외반증 : 무지(엄지발가락)가 바깥쪽으로 굴곡 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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