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새한그룹 워크아웃 幕前幕後①>

해바뀜이 초읽기에 들어간 2009년12월30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이미 예상돼 있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충격적이다. 앞으로 기업과 임직원들이 어떤 고통이 따를까. 남일 같지 않아서다.

나는 당시 새한그룹 홍보부장으로 있으면서 워크아웃을 옆에서 지켜봤다. 워크아웃후 회사는 구조조정으로 갈기갈기 찢어지고 정든 임직원들은 무더기로 보따리를 싸 회사를 떠났다.

삼성에서 분리된 제일합섬과 새한미디어가 주축이 된 새한그룹(회장 이영자). 제일합섬은 1995년 삼성에서 분리됐다. 워크아웃당시 재계서열 27위. 지금 잘나간다는 신세계보다 자산 규모가 컸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워크아웃을 보면서 당시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의 터널을 채 벗어나지 못했던 2000년5월18일. 새한그룹이 주채권은행인 한빛은행에 전격 워크아웃을 신청한 날이다. 구조조정방안을 발표한지 3일만이다.

당시 (주)새한의 부채는 1조5000억원. 제1금융권 차입금은 1조2000억원,삼성화재 등 제2금융권은 2,037억원가량됐다.

워크아웃을 신청하기전 당시 최정덕 대표이사를 비롯한 경영진들이 전문경영인을 외부에서 영입하고,오너퇴진을 비롯한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했지만 시장에서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는 게 그 이유다. 시장반응은 냉담했고,회사채 상환 등 빚독촉은 계속됐다.

당초 새한그룹은 구조조정을 발표하면서 새한 경영진과 대주주는 이재관부회장(이영자회장의 장남,이건희 삼성회장의 조카)이 경영에서 손떼고,사재를 출연하며,보유주식을 소각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또 12개 계열사를 한 개로 줄이기로 했지만 구조조정발표 전날 이재관 부회장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계열사를 3개로 축소하며,사재출연은 없던거로 한게 화근이었다.

종금사 등 2금융권은 이런 구조조정방안으론 새한그룹을 살리기에는 미흡하다고 보고 자금회수를 계속한 것이다.

가뜩이나 '새한이 워크아웃을 전격 신청했다'는 뉴스가 중앙일보의 특종으로 보도되자 (주)새한이 은행에 예치해놓은 예금 300억원마저 동결됐다. 자금난,유동성부족은 더욱 악화됐다. 외부의 자금지원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어려워졌다.

새한그룹은 IMF체제가 시작되기전부터 회사가 어렵다는 루머가 내부에서 돌았다.가뜩이나 IMF체체후에는  장사도 안되고 비싼 이자 또한 감당하기 더 어려워졌다.

급기야 1999년12월쯤 워크아웃밖에 살길이 없다면서 승부수를 던진 당시 자금담당 도근호이사는 이재관 부회장의 급소를 건드리고 말았다.  

  "워크아웃가면 경영권,나는 어떻게 되느냐" 

이재관 부회장은 도근호이사의 회사를 살리겠다는 '충정'을 '괘씸죄'쯤으로 여겼을터. 이재관부회장이 '모셔왔던' 대학교수 등 사외이사들은  오너십에 도전한 도이사를 내치도록 부추겼다. 

회사 내부에서 배짱이 두둑하고 할말을 다해 소신있다고 평이 난 그는 이재관 부회장과 마찰후 경질당해 회사를 떠났다.

당시 자금담당 임원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도이사보다 선임이었던 삼성출신의 노춘호상무는 내부불화로 회사를 떠났다가 도이사가 회사를 그만두자 후임으로 다시 경영지원담당 전무로 복귀했다.

하지만 노전무도 나중에 책임문제가 불거질 것을 우려해 "분식회계하라"는 최고 경영층의 지시를 거부하고 회사를 떠났다. 회사분위기는 흉흉했다.

이재관 부회장의 이런 인사파행으로 내부 분란과 잡음이 계속됐다.

게다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에서 쫓겨난 일부 계열사 간부들과 노조가 민주노총,민주노동당과 합세해 이영자회장,이재관부회장을 탈세및 횡령혐의로 검찰과 국세청에 고발하면서 내분은 급기야 밖으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사태는 엎친데 덮친격. 내분의 화마는 들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채권단은 새한 내부사정은 물론,자금사정도 꿰뚫었다.

이재관부회장이 삼촌인 이건희회장,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 삼성그룹 수뇌부에 지원을 요청하고 다니면서 회사가 어렵다는 사실이 삼성그룹에 포착됐다. 결과적으로 삼성이 도와주기는 커녕,새한의 지원요청 과정에서 입수한 정보로 자금회수에 들어가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아이러니다.  역시 돈은 피보다 진했다. 

급기야 삼성화재가 견질어음을 돌렸다. 이후 자금난 소문은 기정사실화됐다. 다른 채권단의 자금회수가 빗발쳤다. 새한은 두손을 들었다. 자금난을 이겨낼 충분한 자산이 있었지만 팔리지 않았다. 되레 삼성에 대한 지원요청이 결정타,독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새한은 무너져갔다.  

워크아웃후 첫 채권단회의에서 새한의 워크아웃은 거부됐다. 새한은 기로에 놓였다. 부도직전. 파산가능성마저 보도됐다. 오너와 회사측의 압박은 최고도에 달했다.

무엇보다 워크아웃이 부결된데는 새한부채의 22%이상을 갖고 있는 산업은행의 반대가 심했다. 워크아웃이 물건너가는 와중에 새한미디어만 살아났다.

이 과정에서 이근영 산업은행총재(나중에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을 지냄)가 이재관부회장을 독대하고 압박했다.

“주식과 경영권을 포기하면 자금지원을 검토하겠다.”

그간 경영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못해 1차구조정이 실패로 돌아간 이부회장은 고민에 빠졌다.

경영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권력은? 명예는?  책임은?  머리가 복잡했다.  정말이지 선뜻  미련을 버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구조조정때도 언제든 경영에 복귀할 수 있는 이사회 멤머로 참여하겠다고 해서 시장의 불신을 가져오지 않았던가.

이런 와중에 이근영총재가 이재관부회장을 직접 불러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금지원이 없고 결국 부도가 나 파산내지는 법정관리밖에 도리가 없다”는 식으로 최후통첩했다.

나는 이재관부회장의 당시 핵심측근이었던 안병기전무와 홍보대책을 놓고 마주앉았다. 그는 이재관부회장이 경영권,사유재산 등 모든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으며,이제 결단만 남았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제 “홍보로 어떻게 채권단을 설득할 것인가” 만 남았다.

그와 논의 끝에 “이부회장의 주식,경영권은 물론,이부회장과 어머니 이영자회장의 현재 살고 있는 이태원 집,타고 다니는 자동차까지 모든 사재를 다 털어 회사를 살리겠다고 발표하자”고 제의했다.

안전무는 이런 홍보안을 가지고 이부회장과 논의했다. 이 부회장은 나에게 전화해 “잘부탁한다. 홍보대책을 잘 해주기 바란다.잊지않겠다”는 목소리에는 비장감이 담겼다.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어 “이태원자택 35억원,아버지 이창희회장이 묻혀있는 선산인 충주시 가흥면 임야 28만평 38억원 등 사재 247억원 등을 포함한 전재산을 내놓겠다.그리고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퇴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000년6월2일자 조간에서는 “강력한 구조조정의 의지를 보이기위해 현재 살고 있는 집과 자동차까지 헌납키로 했다”는 국민의 감성을 파고드는 기사가 먹혀들었다.

‘집까지 파는 성의를 보였다’는 채권단의 반응도 기사화됐다. 여론은 이재관부회장이 “회사를 살리기위해 전재산을 포기하는 결단의 모범을 보였다”고 동정했다.

다음날 이근영총재는 신문기사를 보면서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까지 뺏을 수 있나,그대로 살도록 해줘야지..”라는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여론의 동정을 사는데 성공했다. 채권단 2차 회의를 앞둔 바로 그날.

6월3일 채권단회의에서 새한의 워크아웃은 극적으로 수용됐다. 8월19일까지 모든 채권행사는 유예됐다. 당장의 부도를 가까스로 피해갈 수 있었다.

그후 새한은 산업은행관리로 들어갔다가 몇 년후 웅진그룹에 팔렸다.

워크아웃 수년동안 이재관부회장은 ‘파산’하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가 낭인의 길로 들어섰다. 새한 임직원 1800명중 500명이 회사를 떠났고,실직했다. 지금은 남아있는 최후 생존자는 1000여명. 워크아웃의 후폭풍이 어떤지 다른 설명이 필요없다. 

일부 최고 경영자들은 감옥에 갔고,아직도 재기로 몸부림치고 있다.  새한 워크아웃의 전말은 그랬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 임직원을 줄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닥칠지 새한그룹의 걸어온 길이 참고가 될지 모르겠다. 오너를 비롯한 최고 경영자,임직원들은 이제 혹독한 겨울을 다시 맞게 될 것이다. 

후기:이 기사에는 당시 관련 임원들의 실명을 본인 양해없이 게재했습니다. 사실그대로, 실감을 더하기 위한 것으로, 관련 당사자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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